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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평범한 백성들은 왜 순교의 피를 흘렸을까?

입력 | 2015-07-22 03:00:00

문화유적답사, 제대로 즐기는 법
①‘뒤집어 보기, 질문해 보기’




전국 곳곳으로 문화유적 답사를 떠나는 여름방학 시즌. 어떻게 하면 답사를 좀 더 재미있게 즐기고,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취향과 눈높이에 맞춰야 하고, 미리 공부하고 가야 한다는 점. 문화유적 답사 제대로 즐기는 법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그 첫 회는 ‘뒤집어 보기, 질문해 보기’.

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

충남 부여와 공주, 전북 익산의 백제 유적이 이달 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입니다. 그래서인지 부여를 찾으면 고즈넉하면서 다소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백제의 멸망을 지켜봤기 때문이겠지요.

 ▽명품 감상=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에서 먼저 만나야 할 명품은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9호·7세기 전반)입니다. 단정하면서도 날렵한 몸매를 보세요.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백제 석탑입니다. 백제 석공의 뛰어난 안목이 절로 느껴지지요.

이 탑에는 망국의 한이 담겨 있습니다. 1층 탑신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새겨 놓은 글귀가 있어요. 소정방은 660년 나당(羅唐)연합군을 이끌고 부여에 쳐들어와 백제를 멸망시킨 사람입니다. 그때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글귀를 새겼습니다. 나라 잃은 슬픔이지요.

▽질문하기=삼천궁녀는 정말로 존재했을까?

부소산성과 낙화암에 올라 내려다보는 백마강 풍경도 압권입니다. 낙화암에 오르면 삼천궁녀가 떠오릅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의자왕의 궁녀 3000명이 이곳에서 백마강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 그 모습이 꽃이 떨어지는 듯해 낙화암이란 이름이 붙었지요. 그런데 이 얘기가 정말 사실일까요? 아닙니다. “수많은 궁녀를 통해 의자왕의 방탕함을 부각하고, 그래서 백제가 멸망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강조하려 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승자의 시각에서 패자의 역사를 희화화한 것이지요.

▽더 둘러보기=궁남지, 백제금동대향로, 백제 요강, 신동엽문학관

왕실의 연못이던 궁남지, 왕족들이 묻힌 능산리 고분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에 가면 삼국시대 공예품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7세기)의 매력에도 취해 봐야 합니다. 백제 사람들이 사용했던 휴대용 남녀 요강도 참 재미있습니다. 부여 출신의 시인 신동엽의 생가와 문학관도 꼭 들러보세요. 신동엽의 문학적 삶뿐만 아니라 건물도 매우 감동적입니다.

○ 순교의 흔적, 충남 내포

바닷물이 들어오는 충남의 아산, 당진, 서산은 예로부터 내포(內浦)라 불렸습니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 신앙의 발상지였습니다. 18세기 말 서양의 천주교가 중국을 통해 바닷물을 타고 이 지역으로 들어왔던 것이지요. 이후 수만 명이 순교를 했습니다. 200여 년 전, 평범한 백성들은 왜 기꺼이 순교의 피를 흘린 걸까요?

▽명품 감상=공세리 성당

가장 돋보이는 것은 아산 공세리 성당입니다. 공세리 역시 순교지였습니다. 공세리 성당은 1895년 부임한 에밀리오 드비즈(한국 이름 성일론) 신부가 1922년 신축한 것입니다.

공세리 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어우러져 우아하면서 단정합니다. 더 멋진 것은 주변 경관입니다. 수령 400년짜리 느티나무 등 고목들이 성당 건물을 더욱 멋지게 꾸며 줍니다. 건물과 주변 경관의 조화에서 공세리 성당을 따라올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아내가 돌아왔다’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하기도 했지요.

▽질문하기=이명래 고약을 전시 중인 까닭은?

고풍스러운 박물관(옛 사제관)에 들어가면 ‘이명래 고약’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종기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시커먼 이명래 고약을 붙였습니다.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지요. 이 고약도 공세리 성당에서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종기로 고생하자 드비즈 신부가 종기 퇴치 고약을 제조했고 그 방법을 신자 이명래에게 전수했던 것이지요.

▽더 둘러보기=솔뫼성지, 해미읍성, 마애삼존불

가까운 당진에는 솔뫼성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으로,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지요. 서산에 가면 해미읍성이 있는데, 이곳 역시 천주교도 3000여 명이 박해를 받아 순교한 곳입니다. 순교의 흔적을 지나, 내친김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일명 마애삼존불·국보 84호·6세기 말∼7세기 초)을 감상해야 합니다. 해맑고 넉넉한 백제의 미소에 기분이 상쾌해질 겁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