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공항 면세점 둔갑한 미술관 아트숍

입력 | 2015-07-22 03:00:00

삼성미술관 ‘천개의 플라토 공항’전




가짜 탑승구로 오르는 계단을 무너뜨려 놓은 ‘탑승구 23’. 그 앞에는 인어공주 조각의 모델을 남성으로 바꾼 레진과 폴리우레탄 조각 ‘He’를 놓았다. 작가들은 한때 동거하다 갈라선 동성애자다. 플라토 제공

‘어라, 위스키를 파나?’

안 판다. 23일∼10월 18일 서울 중구 삼성미술관 플라토 지하 1층 아트숍을 방문하는 관람객은 물건 고를 때 조심해야 한다. 판매하는 상품과 전시용 ‘작품’이 전시 기간 동안 섞여 놓인다. 괴짜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은 첫 한국 기획전 ‘천 개의 플라토 공항’을 위해 가게 일부를 공항 면세점으로 변용했다.

마이클 엘름그린(54·덴마크)과 잉가 드라그셋(46·노르웨이)은 200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을 계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각각 시인과 연극배우였던 두 사람은 주어진 전시 공간을 전혀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천연덕스럽게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2005년에는 미국 텍사스 주 사막에 가짜 프라다 플래그숍을 설치했다. 엘름그린은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것을 목격한 이의 반응에 주목한다. 예술가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누군가가 ‘예술 작품’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예술은 비로소 본질적 역할과 기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마이클 엘름그린(왼쪽)과 잉가 드라그셋.

이번에는 2년 전부터 두 차례 방문한 플라토 미술관 공간 구성이 공항과 흡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검색대, 수하물 수취대, 반입금지물품 안내소, 탑승 게이트를 갖춘 가짜 공항을 만들었다. 여기저기 놓인 짐 싣는 수레는 실제 공항에서 쓸 수 있는 제품이다. 미술관 간판에는 공항 간판을 티 나지 않게 덧달았다. 출입구 밖에도 가짜 공중전화 부스와 항공편 안내판을 그럴싸하게 설치했다. 행선지 목록에는 현실에 없는 카르타고와 엘도라도를 슬쩍 끼워 넣었다.

표제에도 차용한 전시 모티브는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저서 ‘천 개의 고원’. ‘천 개의 꿈’이라 이름 붙인 위스키병 레이블에는 ‘핑크팬서가 되라. 그러면 당신의 사랑이 백인 청교도(WASP), 난초, 고양이, 개코원숭이처럼 될 것’이라고 썼다. ‘천 개의 고원’에서 가져온 텍스트다.

직설을 피한 사회비판적 기호가 곳곳에 보물찾기 게임처럼 숨어 있다. 하녀가 대기한 1등석 라운지에는 음산한 조명이 폐허처럼 점멸한다. 현금인출기 아래에는 포대에 싸인 갓난아기 인형을 놓았다. 드라그셋은 “공항은 떠남의 해방감을 만끽하려 모여든 개인을 온갖 제약으로 속박하는 공간이다. 중립적 공간과 정지한 듯한 시간을 낯설게 바라보길 원한다. 우리의 작품은 관람객 저마다의 해석으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