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집중호우로 인해 홍천강 상류의 물이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자연은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돌보듯이 인간을 품어주지만, 때론 큰 시련을 주기도 한다. 인간의 무절제와 탐욕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업보’ 탓일까. 이젠 가뭄이든, 호우든 ‘기상관측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을 정도로 자연재해의 양상과 결과는 자못 심각하다.
필자는 최근 강원도 최북단 지역인 화천과 양구, 인제 일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유년기를 춘천에서 보냈고 화천에서 군 생활을 했으며 이후 홍천으로 귀농해 6년째 살고 있는 필자에게 강원도는 (누구나 떠올리듯이) ‘산 좋고 물 좋은’ 산수화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다행히 농민들은 지난달 하순 시작된 장마와 태풍이 뿌린 비로 극심한 가뭄에 대한 걱정은 한숨 돌렸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장마철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혹시나 산사태나 침수 피해를 입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이게 된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은 마을 앞으로 홍천강(상류)이 흐르는데 평소엔 시냇물처럼 보이다가도 장마철만 되면 성난 강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순식간에 불어난 강물에 마을과 마을을 잇는 작은 다리가 잠기기도 한다.
장마와 함께 태풍까지 발생하면 ‘애써 지은 한 해 농사를 망치지나 않을까’ 농심은 걱정이 태산이다. 2012년 여름 태풍 볼라벤의 습격으로 수확을 앞둔 고랭지 배추농사를 망치는 바람에 결국 귀농 첫해에 다시 도시로 되돌아간 한 귀농인의 눈물을 필자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렇듯 농촌생활, 전원생활이란 그저 자연이 주는 낭만과 여유, 목가적인 평화로움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되레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자연의 시련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래 전원생활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애초 귀농·귀촌 설계 및 준비 단계에서 자연재해란 변수를 십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전원 입지는 자신의 전원행 목적과 용도를 감안하되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갈수록 변화난측한 자연재해도 특정 지역에 빈발하는 등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띠고 있다. 극심한 가뭄과 집중호우, 태풍, 폭설 등의 피해가 잦은 곳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를 위해 넓게는 기상청의 기상자료나 지방자치단체의 재해정보 지도를 참고하면 좋다.
자연재해로부터 보다 안전한 땅을 얻고자 한다면 현장에 답이 있다. 즉 가뭄이나 폭우가 극심한 바로 그때 직접 찾아가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극심한 가뭄에도 주변 강이나 계곡 물, 지하수가 풍부하다면 물 걱정이 필요 없는 땅이요, 역으로 장마철 집중호우에도 산사태나 침수 피해가 없다면 그 또한 살기에 좋은 땅이다.
예부터 명당이란 바람을 갈무리(저장)하고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풍수란 바로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다. 대체로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쪽으로 물이 유유히 감아 흐르는 배산임수의 입지로,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남향의 땅이 그렇다.
자연이 주는 시련을 우리가 거부할 순 없다. 그러나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작물 또한 이런 고비를 하나씩 넘기면서 여름 기운을 받아 제대로 영글어 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연재해에 대비해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되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대처한다. 이렇게 자연이 주는 시련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전원생활은 한층 지혜로워지고 성숙해진다. 시련 또한 값진 전원생활이기에.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