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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정명준 쎌바이오텍 사장

입력 | 2015-07-22 03:00:00

“토종 유산균 개발” 전국 돌며 신생아 분변까지 뒤져




정명준 쎌바이오텍 사장이 프로바이오틱스로 만든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과제를 완수할 때까지 장가를 가지 않겠습니다.”

젊은 패기로 동료들 앞에서 큰소리를 쳤다. 과제는, 발효를 통해 얻는 글루탐산나트륨(MSG) 비율(발효 수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수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많은 연구원들이 20년 가까이 못 푼 과제가 쉽게 해결될 리 없었다.

끝장을 보겠다고 결심했다. 연구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박테리아와 씨름했다. 발효를 잘하도록 박테리아의 서식 여건을 좋게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성과가 안 나오자 환경을 나쁘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박테리아가 스트레스를 받아 발효가 잘 안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6년 만에 MSG 발효 수율을 20% 높이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회사(당시 미원)는 공로를 높이 사 해외연수를 보내줬다. 연세대 생물학과를 거쳐 서울대에서 미생물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입사했던 그는 1989년 덴마크 왕립공대로 유학을 떠났다. 유산균 발효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92년 귀국했다. 일하던 공장이 팔리자 1995년 경기 김포 끝자락에 작은 회사를 세웠다.

정명준 쎌바이오텍 대표이사 사장(57)은 덴마크 유학 시절 알게 된 프로바이오틱스를 사업 아이템으로 정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체내에 들어가 면역 강화, 장 질환 억제 등 건강에 도움을 주는 살아 있는 균으로 유산균, 비피더스균 등이 대표적이다.

“프로바이오틱스가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MSG가 1kg에 1달러일 때 유산균은 500달러에 팔릴 만큼 부가가치가 컸어요.”

해외에서 종균을 수입한 뒤 배양해 파는 손쉬운 방법 대신 국산 유산균을 추출해 제품화하기로 했다. 대기업도 국산화에 신경을 쓰지 않을 때였다. 전 직장과 덴마크에서 10년 넘게 발효를 연구한 기술자로서 정도(正道)를 걷기로 한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발효음식과 이를 먹어 온 한국인의 장에는 우수한 유산균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전국을 돌며 김치, 젓갈, 신생아 분변 등에서 균을 채취했다. 1년 만에 토종 균주를 확보했다. 유산균을 최적 조건에서 배양한 뒤 동결 건조해 요구르트나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팔았다.

그러나 매출이 적어 직원 봉급조차 주기 어려웠다. 유업회사에 있던 친구가 원료 대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하라고 조언했다. 한 제약회사에 건강기능식품을 OEM으로 납품했다. 인기를 끌자 10여 개 회사가 앞다퉈 주문했다.

쇄도하는 주문을 소화하려고 1997년 대규모 공장 증설에 착수했다. 호사다마라고 외환위기가 오자 회사가 휘청거렸다. 생산시설에 무리하게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은 할인이 안 되고 자사 발행 어음은 속속 만기가 돌아왔다. 돈을 구하러 백방으로 쫓아다니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텼다. 2000년 벤처 육성 정책으로 숨통이 트인 데 이어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자금난에서 벗어났다. 이후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위를 지나 장에 도달해야 효능을 발휘한다. 유산균은 그냥 섭취하면 위산 탓에 위에서 대부분 죽는다. 위산을 견디는 유산균 코팅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해결책을 못 찾아 애를 먹고 있었다.

“바로 이거다. 단백질로 유산균을 싸면 되겠다.”

두부와 미꾸라지를 넣고 끓이자 미꾸라지가 뜨거워서 두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이 원리를 적용하자 오랜 난제가 풀렸다. 유산균을 단백질로 코팅한 다음, 다당류로 한 번 더 코팅하는 ‘이중 코팅’ 기술을 개발했다. 1g에 1000억 마리 이상 든 유산균이 위에서 견디고 장에서 풀리는 이 기술은 한국, 일본, 유럽 등에서 특허를 받았다.

세계 건강기능식품 흐름을 살피려고 2002년 스위스에서 열린 ‘비타푸드’ 전시회를 찾았다. 붐비는 관람객을 보자 욕심이 생겼다. 오퍼상의 부스 한구석을 빌려 이중 코팅 현미경 사진과 설명서를 내붙였다. 새 기술을 보고 바이어들이 찾아왔다. 상담하는 법도 몰랐지만 성심껏 대답했다. 이스라엘, 프랑스, 이탈리아 기업이 OEM 주문을 했다.

쎌바이오텍은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된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을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OEM에서 탈피하려고 자체 브랜드 ‘듀오락’을 론칭했다. 프로바이오틱스로 대장암, 아토피, 여드름 등을 치료하는 새 의약품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벤처 1세대’ 정 사장의 꿈은 쎌바이오텍을 인류의 삶에 기여하고 미생물 전공자가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정보기술(IT) 분야 구글 같은 바이오 메카로 만드는 것이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