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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후련한 수련

입력 | 2015-07-22 03:00:00


후련한 수련 ―박성준(1986∼ )



항상 얼굴의 북쪽에서만 키스를 하겠소
한 무리의 싱거움을 조롱하고 가는 입김
수련의 속내가 태양의 뿌리를 흔들며 연못을 개봉하고
가라앉은 얼굴을 꺼내 봉인해온 말을 터뜨리면
자꾸 모르는 이름만 가시를 쥐고서 여름을 방문하고 있소
외침이 될 때까지 몸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헤매는 춤의 하소연이란
애인의 소란스러운 울음을 감싸 안을 때처럼
반짝이는 빈틈으로 여기에 거울을 깨고 있소
모르는 말이 건너오는 동안
바늘을 쥐고 삼베처럼 웃으며 깊은 혀를 꾹 다문 수련
저기 후련하게 수련이 물을 쥐고 솟아 있소
물속을 듣던 바위의 귀는 오래오래 초록을 껴안고
시시때때 하얀 발톱들은 잇몸 근처에서 자라나오
어쩌자구 물속에는 찡그린 미간들이 그리도 많아
물의 어깨를 비튼단 말이오, 비바람과 수련이 키스를 나누는 동안
저 부력은 감은 눈꺼풀에서 풀려 나오는 힘
눈을 감고 응결하는 입술과 입술들의 향연
빗줄기의 청력이 허공과 연못을 꿰매고 있소
서로가 서로에게 눈이 없어 몰라도 좋을 얼굴, 그저 묻고 있소
향기로 취미를 가진 우울한 표정들이여, 꺼져가는 물속의 핏빛을 보오
툭 터진 엄지에서 연못을 향해 배어 나오는
개봉된 허공의 저 피를 보시오





‘저기 후련하게 수련이 물을 쥐고 솟아 있소’, 이 한 구절만으로도 감각을 후련하게 치고 들어오는 생생한 이미지의 시다. 그러나 여름날 빗속에서 연못에 피어 있는 수련을 모사하는 시인들은 ‘한 무리의 싱거움’이라는 게 박성준의 시 의식(詩 意識). 그에게 세상 만물과 만사는 그 수면 아래 ‘가라앉은 얼굴’이 있는 것이며 시 쓰기는 그것에 ‘몸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헤매는 춤’, 언어의 고행이자 축제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거울(수면)을 깨고’ 있는 ‘하얀 발톱들’인 ‘비바람’은 수련과 ‘키스를 나누는’ 동시에 ‘모르는 말’로 ‘허공과 연못을 꿰매고’ 있는 것이다.

‘항상 얼굴의 북쪽에서만 키스를 하겠소’, 죽은 이의 머리를 북쪽에 두는 관습과 잘 때 머리를 그리 두지 말라는 미신이 떠오른다. 죽음의 세계인 ‘북쪽’에서만 접촉하겠다니…. ‘바늘을 쥐고 삼베처럼 웃으며 깊은 혀를 꾹 다문 수련’이 상복이나 수의를 짓는 처녀처럼 귀기 서리고 처연하다. 생이 뿌리 내리고 있는 연못의 깊은 속내를 휘저으며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 삶을 언제나 간섭하는 죽음이 연기처럼 증기처럼 ‘풀려 나오고’ ‘배어 나온다’. 이 낯설고 음습한 세계의 긴장된 고요, 들끓는 정적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박성준은 ‘어쩌자고’ 무당 같다. 엄지손가락을 물어뜯는.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