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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강수진]울어도 괜찮아

입력 | 2015-07-22 03:00:00


강수진 문화부장

(※이 글에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나는 안 울어/참고 참고 또 참지/울긴 왜 울어….”

중년층은 지금도 따라 부를 수 있는 TV 만화 ‘캔디’ 주제가다. 노래 가사처럼 캔디는 힘든 상황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캐릭터다.

하지만 순정만화나 신데렐라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론 딱일지 몰라도 현실의 쓴맛을 아는 어른에겐 무한긍정 캐릭터가 솔직히 달갑지 않을 때도 있다.

요즘 극장가 흥행 1위 영화는 미국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다. 개봉 첫 주 4위에서 시작했는데 슬금슬금 입소문이 나며 순위를 역주행하더니 ‘연평해전’을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방학 맞은 애들 덕분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지난 주말 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아이보다 어른이 더 많았다. 옆자리에 앉은 20대 청년은 후반부엔 내내 훌쩍거렸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아이와 함께 보러 갔는데 나만 울었다’는 부모들의 소감도 줄을 잇는다. 영화사는 애들이 보는 더빙판보다 자막 상영관을 더 많이 배정했다. CGV 연령별 예매율도 20대가 가장 높다. 그 다음이 30대이고, 아이를 데리고 볼 연령대인 40대는 오히려 더 낮다.

칸 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받은 이 영화는 기억과 망각,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다룬다. 감정을 의인화하고, 기억을 구슬로 표현하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뇌 속 세계와 첨단 인지과학 이론을 쉽게 펼쳐 보인다.

감정 캐릭터인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는 11세 소녀 라일리의 머리 속 감정컨트롤 본부에 산다. 정체성을 만드는 ‘핵심 기억 구슬’을 관리하고 감정컨트롤 조종간을 잡고 주도하는 건 기쁨이다. 기쁜 기억이 많아야 캔디처럼 라일리가 웃음을 잃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고 여겨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심리학자들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지던 슬픔의 순기능에 주목한다. 특히 눈물을 흘릴 때 얻는 카타르시스 효과는 강력하다. 낯선 환경에서 힘들어하며 방황하던 라일리도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고 울음을 터뜨린 뒤 치유된다. 때론 슬픔이 힘이 된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울어도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슬픔인 셈이다.

어른들의 콧날을 가장 시큰하게 만드는 장면은 라일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기억’의 진실이 밝혀지는 대목이다. 라일리가 어린 시절에서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실은 슬픔에서 비롯됐다는 거다. 기쁨과 슬픔은 결국 뗄 수 없으며 라일리에게는 모두 소중한 감정이라는 메시지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선 광복 이후 70년의 세월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국채, 농협 1호 금고 저금통, 1억 불 수출의 날, 경부고속도로 개통, 수출 1호 포니 자동차….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기억 구슬’이다.

눈부신 고속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온 대한민국 70년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행복하고 기쁜 기억 구슬만 간직하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라일리처럼 행복한 순간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쁜 기억의 이면에 실은 슬픔이 있었던 건 아닌지, 애써 잊어버리려 했던 기억은 없는지….

강수진 문화부장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