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어느 날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다가 갑자기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읽고 있던 기사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보낸 탐사선 ‘뉴허라이즌스’가 명왕성에 접근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사 말미에 느닷없이 모델 겸 배우 유승옥 씨(25) 반응이 들어간 겁니다.
트로트 가수 홍진영 씨(30)가 무역학 박사라는 걸 알고 있던 저는 혹시 유 씨가 대학에서 우주 관련 전공을 공부한 건 아닐까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생물산업공학을 전공했더군요. 그런데 도대체 왜 갑자기 유 씨 반응이 들어간 걸까요?
한 누리꾼은 “정말 창조적인 기사 작법이다. 한글의 놀라운 사용 방법에 대해 세종대왕께서도 깜짝 놀라셨을 듯하다”며 “유 씨가 (MBC 연속극) ‘압구정 백야’에서 정말 짧고 임팩트 있게 나왔는데 이런 기사가 더 임팩트 있다”고 평했습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계좌추적을 해봐야 한다”거나 “스폰(서)을 받는 게 틀림없다”는 의견이 그들에게도 전달된 것일까요. 최근 며칠은 유승옥 저널리즘이 실종된 상태. 그러자 한 누리꾼은 “유 씨는 왜 요즘 사회 현안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듣고 싶다, 그녀의 생각을!”이라면서 ‘중독 증세(?)’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유 씨를 상대로만 이렇게 포스트 모던한 저널리즘이 유행하는 건 아닙니다. 역시 인터넷 기사 한 토막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토마토 칼로리가 화제인 가운데 방송인 예정화의 몸매 관리 비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잘 모르시는 분께 소개해 드리자면 예정화 씨(27)는 모델 및 미식축구 월드컵 국가대표 스트렝스(strength) 코치 출신으로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유명해진 인물입니다. 다른 연예인들이 비슷하게 등장하는 기사도 적지 않습니다.
추측건대 이는 예전에 인터넷 기사 끝에 누리꾼들 반응을 소개하던 형태가 업그레이드된 것이라고 봅니다. 비밀 아닌 비밀을 공개하자면 기사 말미에 괜히 ‘이에 대해 누리꾼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다’고 쓰는 건 검색엔진용입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많이 찾는 낱말(키워드)을 반응에 넣어 검색엔진에 잘 걸리도록 하려는 거죠. 보통 인터넷 기사는 페이지 노출 횟수에 따라 광고비를 받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광고 수익을 올리는 겁니다.
이렇게 유승옥 저널리즘이 유행하는 현실에 대해 유 씨는 “그런 기사를 보고 솔직히 조금 황당했다. 그런데 이게 누구한테 해를 끼치는 건 아닌 것 같다. ‘너 빽이 누구냐’ 같은 악플도 봤지만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믿는 분은 없을 거다. 나 한 사람에게만 피해가 되는 일이라면 앞으로도 신경 쓰지 않고 내 할 일을 열심히 하겠다”며 “이번에 발레와 개인트레이닝(PT) 모션을 합쳐 ‘발레이션’이라는 운동을 새로 만들었다. 책도 나왔으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유승옥 저널리즘을 소개하는 글에서 유승옥 저널리즘이 빠지면 서운한 법이죠.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