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건강 리디자인] [당신의 건강가계도를 아십니까]고혈압 가족력환자 건강 컨설팅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이 동시에 나타난 나주환(가명·왼쪽) 씨가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과 교수에게 체성분 분석 및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를 듣고 있다. 임 교수는 “복부비만을 해결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나 씨는 부모님과 형제가 고혈압을 앓았던 가족력이 있지만 그동안 이를 간과해왔다. 나 씨의 아버지는 평생 고혈압 약을 복용하다가 노환으로 사망했다. 이후 어머니는 고혈압을 앓다가 파킨슨병으로 사망했다. 고혈압은 유전적 영향이 있기 때문에 직계 가족 중에 고혈압이 있으면 본인도 고혈압이 생길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20∼30% 높아진다.
건강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한국에 귀국한 나 씨. 동아일보 건강리디자인팀은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과 교수와 함께 나 씨의 고혈압 진행 상태와 합병증 발생 여부 등을 점검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설치된 이중 에너지 X선 흡수 촬영기(DEXA)를 통해 방사선 노출 없이 나 씨의 체구성 성분과 복부 내장지방도 검사했다.
임 교수는 “어머니의 직접적 사인은 파킨슨병이지만 이 병은 고혈압에 의한 뇌혈관 막힘이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나 씨는 “고혈압 때문에 파킨슨병이 나타날 수 있느냐?”고 놀라워하며 되물었다.
뇌혈관 막힘은 고혈압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 합병증 중 하나다. 고혈압 환자는 혈관이 좁아져 피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다양한 질환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이 뇌에 나타나면 뇌중풍(뇌졸중), 뇌출혈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파킨슨병은 뇌혈관 문제로 인해 신체조작 및 인지기능에 장애가 나타나는 병으로, 그의 어머니는 고혈압에 의한 뇌혈관 막힘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임 교수는 “고혈압은 꾸준히 혈압 약을 복용하며 조절하면 된다”면서 “방치하면 또 다른 합병증이 더 무서운 병”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의 권유에 따라 나 씨는 전신의 체구성 성분을 살펴볼 수 있는 이중 에너지 X선 흡수 촬영, 심장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통해 신체 분석을 받았다.
심장 CT 검사 결과 심장(관상)동맥 협착이 발견됐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중요한 혈관의 30%가 꽉 막힌 상태였다. 임 교수가 보여준 차트 속 나 씨의 혈관은 뻥 뚫린 관이 아니라 흰 찌꺼기가 쌓인 모습이었다. 혈관에 쌓인 찌꺼기들이 석회질로 변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찌꺼기들이 피 흐름을 방해했다.
○ ‘소금기’ 많은 음식들…얼마나 먹어야 안전할까
나 씨는 짠 음식을 좋아한다. 부인도 마찬가지다. 필라델피아로 이민을 간 이후에는 염분 섭취가 훨씬 많아졌다. 나 씨는 “미국에선 대부분 음식이 짠 편이다”라면서 “도대체 어느 정도로 싱겁게 먹어야 안전하냐”고 물었다.
이 때문에 고혈압 환자는 염분을 하루 10g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미각에 의존해 염분을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미각세포도 퇴화해 ‘싱거운 음식’과 ‘짠 음식’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음식이 뜨거운 상태에서 확인하면 짠 음식도 덜 짜게 느껴질 수 있다. 염도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염도계’를 구비하는 게 좋다.
임 교수는 “국 한 그릇에 3∼4g, 햄버거 하나당 2∼2.5g의 염분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즉, 하루 세 끼 국에 밥을 말아 먹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반찬을 전혀 먹지 않더라도 이미 하루에 먹어야 할 염분의 양을 초과하게 된다. 고혈압 환자라면 아예 국물은 먹지 않아야 한다.
자주 먹는 칼국수 한 그릇에 들어있는 염분은 7g이 넘는다. 라면 한 그릇에 포함된 염분도 5.3g이다. 피자는 한 조각에 3.3g, 감자칩 한 봉지에는 1.3g의 염분이 들어있다. 나 씨는 “늦둥이인 고3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라며 “나뿐 아니라 가족들도 주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나 씨는 최근 식사 때마다 생수를 끓인 뒤 짠 음식이 나오면 물을 부어 싱겁게 먹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체중조절. 나 씨는 키 172cm에 몸무게 96kg으로 체질량지수가 32.4에 해당하는 고도비만이었다. 특히 내장 지방량이 128cm²(정상 103.8 미만)로 많은 복부비만인 것으로 확인됐다.
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 나 씨는 친인척의 사업을 도우면서 회식도 자주 하는 편이다. 임 교수는 “운동을 통해 체중을 5% 정도 감량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술자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나 씨는 현재 술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던 일들을 건강을 위해 중단했다. 그 대신 강원도 시골마을에서 작은 농장을 일구며 건강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주치의 한마디]싱겁게 먹고, 스트레스 피하고, 푹 자야 혈관 건강 ▼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고혈압은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조절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약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고혈압으로 인한 혈관 합병증이 나타나지 않는지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혈압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합병증으로는 심근경색, 협심증 등의 심장 질환과 중풍 등의 뇌혈관 질환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신장 질환도 생길 수 있다.
고혈압 환자에게 제시하는 ‘3가지 수칙’은 염분, 스트레스, 수면 조절이다.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뤄야 고혈압을 예방할 수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싱겁게 먹는 것. 하루 염분 섭취량은 10g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트레스는 혈관의 긴장상태를 높여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고, 이로 인한 합병증도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수면도 중요하다. 수면이 부족하면 몸이 긴장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혈압이 올라간다. 따라서 성인의 경우 7시간 이상의 수면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씨는 고혈압 진단을 받은 이후에 살을 뺐다고 하지만 여전히 복부에 내장 비만이 심한 상태다. 추가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려면 본인 몸무게의 5%는 줄여야 한다.
다행히도 환자는 술자리가 많은 직장을 벗어나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서 밭을 가꾸며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하루 1∼2시간 밭을 가꾸는 것만으로도 큰 운동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