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켜요 착한운전]면허시험 동승 르포 면허 간소화 4년… 일반인 400명-전문가 31명 설문조사 했더니
지난해 12월 면허를 딴 회사원 이지현 씨(34·여)는 아직도 운전대 잡기가 겁이 난다. 올 2월 좁은 이면도로에서 사고를 낼 뻔한 뒤로 자신감을 잃었다. 2013년 12월에 면허를 취득한 이도윤 씨(27·여)는 “도로 주행을 감점도 없이 한번에 합격했는데 학원 강사가 ‘절대 연수 없이 도로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며 “부모님이 수차례 연수를 해준 뒤에야 겨우 혼자 운전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운전면허 간소화 4년을 맞아 지난달 1∼4일 운전면허를 소지한 일반인 400명과 교통안전 전문가 31명에게 현행 운전면허 제도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일반인의 81.8%(327명)와 전문가의 83.9%(26명)는 현행 운전면허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간소화 이전 또는 이후에 면허를 딴 것과 상관없이 비슷한 의견이었다.
쉬워진 운전면허 제도가 도로 위 안전을 위협한다는 주장에 대해 경찰은 “간소화 이후 초보 운전자 사고는 오히려 줄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찰이 제시하는 통계는 이른바 ‘장롱면허’와 외국인 취득자가 포함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허억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어린이안전학교 대표)는 “운전 연습을 덜 했더니 사고가 줄었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며 “제대로 통계를 내려면 면허 취득자 중 실제로 얼마나 운전을 하는지, 그중 얼마가 사고를 내는지 정확히 추려서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장내 기능과 도로 주행 교육의 시간 및 평가 항목을 강화해 ‘실전 감각’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선진국일수록 운전면허 따기가 어려운데 우리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며 “장내 기능과 도로 주행 교육을 더 많이 해서 운전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주석 국회 교통안전포럼 사무처장은 “일반적으로 운전면허 제도는 의무교육을 강화하는 ‘진입 규제’나 시험을 강화하는 ‘출구 규제’중 하나를 택하는데 한국의 제도는 둘 중 아무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라며 “국내 운전 문화나 도로 상태 등을 고려해 적합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올 2월 말 전문가들로부터 ‘초보운전자 안전 운전 역량 강화를 위한 운전면허 시험 개선 방안 연구’ 용역보고서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 개선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용역보고서를 토대로 장내 기능과 도로 주행 교육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응시자의 비용 부담을 높이지 않기 위해 의무교육 시간은 그대로 유지한 채 평가 항목 일부를 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내부적으로 주차 평가를 도로 주행에서 장내 기능으로 옮기고 간소화되면서 없어진 경사로 코스 등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도로 주행시험 채점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 채점의 비중도 점차 높여 갈 방침이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