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천만 영화’ 꿈꾸는… ‘암살’의 최동훈 감독
최동훈 감독은 “‘암살’은 아주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영화다. 총을 들고 달려가는 여자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며 “시나리오가 풀리지 않을 때는 당시 사진들을 마치 조상님 사진 보듯 들여다보곤 했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암살’ 개봉일인 22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제작사 케이퍼필름에서 최동훈 감독(44)을 만났다. 이미 ‘도둑들’(2012년)로 1298만 관객을 기록한 그이지만 순 제작비만 180억 원이 든 대작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다소 긴장돼 보였다. 한 시간 인터뷰 동안 커다란 머그컵에 커피를 두 번이나 더 부탁해 마셨고 대답을 망설일 때도 많았다. 최 감독의 사무실에는 염석진(이정재)이 끼고 나온 손가락 의수부터 안옥윤(전지현)의 안경집 등 각종 영화 소품과 사진, 스케치가 빼곡했다.
개봉 닷새 만인 26일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암살’. 흥미진진 제공
―1911년, 1933년, 1949년 세 시간대가 등장하는 데다 등장인물도 많다. 처음 출발점은 어디였나.
“처음 구상 때는 추리극 느낌이 강했다. 이번에 시나리오를 다시 쓰며 시대와 인물에 좀 더 집중했다. 염석진과 안옥윤,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라는 인물을 먼저 떠올린 뒤 줄거리를 만들어 나갔다. 셋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친일파와 독립군,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방관자.”
―소품이나 세트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차량 추격 신을 멋지게 찍고 싶었는데 옛날 차라 시속 30km밖에 속도를 못 냈다. 전 세계에 몇 대밖에 안 남은 차들이다 보니 차가 상전이었다. 한번은 중국촬영소에서 빌린 차로 찍다가 차 속도를 좀 냈는데 중국 직원이 마구 달려와서 차 키를 확 빼버리더라.”
“그냥 암살 이야기를 할 거면 굳이 1930년대로 갈 필요가 없다. 그 시대를 관객이 엿보면서, 외롭고 쓸쓸한 정서를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끝 부분이 없다면 영화는 그냥 활극이 됐을 것이다. 그 마지막 장면들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속도가 빠르고 ‘쿨’한 범죄물을 주로 만들었는데 ‘암살’은 편집이나 인물을 그리는 방식 등 여러 면이 다르다. 심지어 ‘최동훈 감독의 영화라는 것만 빼면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평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게 대체 누구냐.(웃음) 영화를 만들다 보면 주변에서 자꾸 감독을 카테고리화한다. 그럼 나는 ‘이 사람들이 우리 부모님도 모르는 나를 알려주는 건가?’ 하고 생각하지. 동시에 그런 평가에 내가 속박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암살’은 이전과 달리 영화가 막 달려가다 잠깐 멈춰 서며 그 장면 속의 인물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연속으로 흥행작을 냈는데도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전작은 나의 적’이라고 말한 적도 있던데….
―혹시 구상해 둔 후속작도 있나.
“없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다. 3년에 한 편꼴로 찍고 있는데 10편 찍으면 30년 걸리는구나 생각을 하니까 덜컥 겁도 나고 영화를 더 열심히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감독 일이 삼한사온이다. 엄청나게 고생하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있다.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