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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한기흥]‘돈맛’ 알아가는 北 장마당

입력 | 2015-07-28 03:00:00


고급 아파트에 벤츠 BMW 승용차, 수입 애완견, 삼성 TV, 값비싼 레스토랑과 사우나 헬스클럽…. 물질적 풍요를 이 정도 누린다면 한국에서도 부유층일 것이다. 그런데 평양에서 5만 달러 이상을 갖고 그런 사치 생활을 하는 엘리트 계층이 20만∼30만 명 정도이고, 많게는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올해 4월 보도했다. 김정은 체제의 북 경제가 뜻밖에 괜찮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26일 북한이 올해 초부터 약간의 경제성장을 했고, 작년에 발표된 일련의 경제개혁이 일부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킨 것으로 보인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냈다. “산업과 농업에 시장원리를 적용하려는 개혁 조치들이 북한의 경제성장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지난해 1.0% 성장해 2011년 0.8%, 2012년 1.3%, 2013년 1.1%에 이어 4년 연속 플러스 성장을 이어갔다.

▷주민을 굶주림과 공포로 떨게 하면서 핵 개발에만 열중한 북에서 예상과 다른 실적이 나온 것은 역설적이게도 당국의 무능력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식량난 속에 배급제를 중단한 북은 풀뿌리 시장경제라고 할 장마당을 묵인하기 시작했고, 그 후 20년 정도 지나면서 지하 시장경제가 체제를 지탱하는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다. 올해 5월 구글 위성이 포착한 북의 장마당은 약 396개로 2010년 200여 개에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떼돈을 번 ‘돈주’들이 특권층과 결탁하면서 돈이 돈을 낳는 시스템이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국가정보원은 “장마당 세대는 이념보다 돈벌이에 관심이 많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며, 부모 세대에 비해 체제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고 14일 국회에 보고했다. 장마당 거래가 식량난을 완화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주민이 경제생활을 점차 시장에 의존하면 김정은도 개혁 개방을 심각히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종국에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