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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의 시장과 자유]한국의 국운은 한계에 왔나

입력 | 2015-07-29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최근 ‘아버지의 나라’ 케냐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나이로비에서의 마지막 연설에서 한국을 언급했다. 1961년생인 오바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케냐의 국민총생산이 한국보다 많았지만 지금은 한국이 훨씬 잘사는 나라”라며 케냐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가 언급한 두 나라의 ‘과거와 현재’는 해외 학자들의 책에서도 종종 눈에 띄는 내용이다.

‘대한민국 67년’의 성취

다음 달 15일 광복 70년, 건국 67년을 맞는 대한민국은 신흥국의 우등생으로 손색이 없다. 한국은 제1차 경제개발 계획에 착수한 1962년부터 1991년까지 30년간 연평균 9.7%의 경이적 경제성장을 했다. 좁은 국토와 부족한 자원의 분단국이 짧은 기간에 선진국의 문턱까지 이르렀다. 정치는 제도적 민주화를 달성한 정도를 넘어 과잉 민주주의의 폐해를 걱정하는 단계다.

8·15 직후의 혼란 속에서 이승만 신익희 김성수 조병옥 등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해 역사의 승자인 자유진영의 일원이 되게 했다. 오바마가 태어난 해에 집권한 박정희는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구인회 같은 유능한 기업인과 협력해 당시만 해도 생소한 수출주도형 정책으로 산업화를 성공시켰다. 건국과 부국(富國)의 주역들의 생애에 몇몇 흠이 있더라도 그들의 혜안과 결단이 없었다면 한국의 모습은 전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국운 융성기는 이제 끝난 것 같다. 30년의 고성장기 이후 1992∼2011년의 20년은 연평균 성장률 5.4%의 중성장기였다. 2012년부터는 3% 이하의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조선 철강 화학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모두 휘청거리는 ‘산업절벽’, 성장이 정체되면서 일자리가 격감하는 ‘고용절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래도 밝지 않다. 규제와 인건비 부담 증가,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한 주식 매입으로 투자 빙하기가 찾아올 공산이 크다. 무차별 복지에 따른 재정적자 증가는 심각한 ‘재정절벽’을 불러올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 1%대, 2030년대 0%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서비스업 규제혁파와 진입장벽 철폐, 노동시장 유연화가 저성장의 덫을 타개할 해법이지만 개혁이 결실을 거둘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야당 못지않게 경제민주화에 집착해 지금의 경제난을 초래하는 데 한몫했다. 대통령이 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성장동력 재점화로 선회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경제 살리기 개혁에 가속도가 붙은 영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현재 상당수 여야 정치인의 경제관과 기업관은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개혁의 개념도 주류 경제학자들과 다르다. 국민이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해 정치권을 바꿔놓지 못하는 한 답답한 현 상황이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업 고용 재정의 ‘3중 절벽’


기원전 146년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시켰다. 로마군 총사령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카르타고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역사가 폴리비오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 우리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한때나마 중국에 기죽지 않고 살았던 ‘대한민국 67년’의 국운이 한계에 다다른 듯한 안타까움을 느낄 때면 스키피오가 말한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법칙이 떠오르곤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