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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조영달]주민 볼모 ‘풍납토성 논쟁’

입력 | 2015-07-29 03:00:00


조영달 사회부 기자

“지금의 서울에 백제가 도읍하던 한성기의 도성이 맞습니다. 학계의 인식이 다르지 않습니다.”(박순발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침수 피해가 뻔한데 한강 옆에다 왕성을 짓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됩니까. 왕궁 수준과는 거리가 멉니다.”(이희진 역사문화연구소장)

13일 열린 ‘풍납토성 백제왕성’ 심포지엄에서 벌어진 논쟁이다. 이날 풍납토성의 백제 왕성 진위를 놓고 2시간 내내 토론이 진행됐지만 서로 이견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은 50여 년 전인 1961년 발굴이 시작됐다. 1997년 기와 토기 등 대규모 유물이 발견되면서 학계는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 왕성 터라고 확신했다. 지금까지도 이 학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발굴조사에서 왕성임을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 유물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풍납토성은 왕성이 아니라 군사 방어를 위해 지어진 외성(外城)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4일 충남 공주 부여, 전북 익산의 백제 유적 8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풍납토성이 빠진 것도 이런 이유다. 왕성 터 역시 풍납동이 아닌 지금의 하남 지역이라는 의견도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다.

풍납토성이 ‘왕성이냐, 아니냐’를 놓고 20년 가까이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이나 서울시는 풍납토성을 왕성으로 보고 세계유산으로 확대한다는 기본적인 방침에 변함이 없다. 단지 보상 범위와 발굴 방식에는 다소 이견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연히 백제 왕이 꿈에 나타났다”며 풍납토성 일대를 제대로 발굴하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부족한 돈은 시민기금이나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 사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주민들의 피해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묶이면서 낡은 건물을 새로 지을 수도 없고 재개발 정비 사업도 포기해야 했다. 주민들은 정든 풍납동을 하나 둘 떠나갔다. 이 때문에 왕성 논란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왕성인지 아닌지’를 입증하기 위해서 ‘짧게는 40년, 길게는 100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문화재의 발굴이나 보존을 졸속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유적 발굴로 피해를 보고 있는 주민들의 처지를 외면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풍납토성의 백제 왕성 진위를 떠나 주민들에게 먼저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왕성이 맞다면 합당한 법적 보상과 절차를 거쳐 이주시켜야 한다. 왕성이 아니라면 주민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더는 주민들의 재산권을 담보로 기약 없는 ‘왕성 진위 공방’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

조영달 사회부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