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형제는 하나의 기(氣)로 이어진 존재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형제간에 우애가 좋다 해도 저런 위기의 순간에 아우를 위해 선뜻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형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조선시대 학자 한몽린(韓夢麟) 선생도 ‘봉암집(鳳巖集)’에서 중국의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지금은 이런 행실을 볼 수 없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대홍수가 났는데 무산(茂山) 지역이 유독 심하여 떠내려간 집이 수백 채나 되고 물에 빠져 죽은 이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허생(許生)의 집도 물가에 있었는데 거센 물결이 넘실거려 건너오지도 못하고 온 가족이 다 빠져 죽게 되었다. 이때 그 아우 허혜(許蕙)는 건너편 언덕 높은 곳에 있으면서 형의 집이 점점 잠겨 위급해진 것을 보았지만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아우는 형과 함께 죽겠다며 거센 물살을 헤치고 건너갔다. 마침내 무사히 건너가서 형제는 서로 붙들고 울음을 터뜨렸다. 형이 말하였다. “나야 불행하여 이런 난리를 겪는다지만 너는 높은 곳에 있으면서 왜 나와 함께 빠져 죽으려 든단 말이냐? 물이 빠진 뒤 시체나 찾아서 장사를 지내 주면 되지.” 아우가 울며 답하였다. “형님이 죽는 걸 보고 아우 혼자 차마 어떻게 살겠습니까? 함께 물에 빠져 지하에서 노니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떠내려 오던 나무 덤불이 쌓여 상류를 막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미친 듯이 흐르던 물길이 방향을 바꾸었고, 마침내 온 가족이 무사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모두 죽게 된 위기상황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선생의 말씀처럼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지극한 우애라, 그 정성이 신령을 감동시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豈非友愛出天, 至誠感神而然耶)?”입니다. 형제간의 끈끈한 사랑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핵가족화로 형제 관계도 거의 없어진 오늘날, 이런 사랑은 더욱더 그리울 수밖에 없습니다.
허씨 형제의 행동은 왕림이나 조효의 이야기와 맞먹을 만하다고 하면서도 한몽린 선생은 여기에 한 말씀 더 보탭니다. “왕림과 조효는 그래도 지각이 있는 사람을 감동시켰지만 허씨 형제는 지각이 없는 강물을 감동시켰으니 굳이 따지자면 허씨 형제가 좀 낫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