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교육과정, 이번엔 제대로 바꿔보자]<3>수능 따로, 교육과정 개편 따로
○ 따로 돌아가는 수능과 교육과정 개편
2015 교육과정 개편의 핵심 목표인 ‘문·이과 통합’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육과정 논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는 정부가 수능 개편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교육부는 2013년 8월 ‘입학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 방안’을 제시하면서 2017학년도 수능부터 문·이과를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이미 7차 교육과정부터 고교 과목이 선택제로 바뀐 만큼 문·이과 장벽을 허물 수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논리였다.
이에 교육부는 한발 물러나 당분간은 문·이과로 나누는 수능 체제를 유지하되, 2021학년도 수능부터는 문·이과 통합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문·이과 융합형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는 이를 계기로 시작됐다. 수능 개편을 염두에 두고 교육과정 개정 논의에 들어간 셈이다. 이를 두고 교사들은 본말이 전도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현 교육과정 개편안은 9월에 고시 예정인 반면 수능 개편안 발표는 2017년 하반기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서로 과목과 내용을 맞춰야 할 교육과정과 수능이 따로 노는 바람에 어느 쪽도 실체를 알지 못한 채 개편 작업을 진행하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교육 당국이 수능에서 특정 과목이 빠지거나 줄어드는 데 따른 부담을 피해가기 위해 일단 교육과정 개편부터 서두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시에 종속된 우리 교육의 구조상 교육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은 수능의 변화에 훨씬 민감하기 때문이다. 한 교육과정 전문가는 “특정 과목이 수능에서 빠질 경우 해당 과목 교사와 교수 등이 극심하게 반발할 테고, 통합교육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력까지 나올 것”이라며 “교육당국이 이를 감당할 수 없으니 일을 따로 진행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교육과정 개편안을 만드는 개발진 입장에서는 수능의 윤곽을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수능 과목이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내용을 새 교육과정에 담으려 한다. 학문 간 경계를 없앤다는 통합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통합사회, 통합과학의 구성을 둘러싸고 교과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교육과정의 구체적 내용을 담는 그릇인 교과서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창의적 수업은커녕 교과 진도 나가기에도 벅찰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교육과정과 수능이 제각각 바뀌는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당장 몇 학년부터 수능이 달라진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과목을 배우고 시험을 치게 되는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은 이런 불확실성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초등학생 대상 학원들은 “2021학년도 이후 수능은 어떤 식으로 문·이과 통합 문제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사회와 과학을 최대한 많이 배워둬야 한다”고 유혹한다. 중학생 대상 학원들은 “문·이과 통합 수학은 현재 문과 수학보다 어려워질 것”이라며 “중학교 때부터 미리 고교 이과 수학 진도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윤지희 공동대표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에서는 확정되지 않은 수능 개편안에 대비해야 한다며 불안감을 부추긴다”면서 “교육과정 개편과 수능 개편안 발표 사이에서 불안한 아이들은 사교육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교육과정과 수능 개편안이 별개로 논의되면서 당초 교육과정을 개편하려던 취지가 사라질 것이라는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서울 인헌고 박인규 교장은 “교육과정을 개편하기에 앞서 우리 공교육의 목표가 대학들이 원하는 수준의 인재를 길러내는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의 지식과 교양을 쌓는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어야 했다”면서 “교육의 큰 밑그림을 그리는 교육과정 개편이 이런 합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면서 방향을 잃은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