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일 경제부 기자
보안에 철저한 대기업들도 공시의무를 피해갈 수는 없다.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액이 얼마인지, 연구개발비용은 얼마나 썼는지, 임직원에게 지급한 연봉은 얼마인지 등이 공시를 통해 드러난다. 이 시스템이 기업의 투명경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연간 매출액이나 법인세 부담 정도를 알 수 없는 기업들이 있다.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경영활동이 베일에 싸인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맥도널드, 피자헛 등 글로벌 기업이다. 전자공시시스템의 검색창에 구글을 입력하면 ‘일치하는 회사명이 없다’고 나온다. 아예 등록이 안돼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들은 한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상당 부분을 배당금이나 로열티 명목으로 본국에 송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얼마인지 알 길이 없다. 글로벌 기업에 대한 한국의 감시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부감사를 받지 않으니 만에 하나 이들이 분식회계를 해도 즉각 파악하기 어렵다. 국세청은 이들의 재무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지만 한정된 인원과 조직으로 글로벌 기업 전체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들이 유한회사의 이런 특성을 악용하고 있는 만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2011년 상법 개정으로 유한회사와 주식회사의 차이점은 많이 줄었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유한회사를 외부감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나 국회는 이런 지적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유한회사에 외부감사 등의 의무를 부과하자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공개된 정보가 전무한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지사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에 빗대 ‘스텔스 기업’으로 불린다. 스텔스 전투기를 잡으려면 더욱 정밀한 레이더가 필요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는 만큼 정부와 국회가 이들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건 책임 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