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합격자 몇 명이 지원을 포기하는 바람에 제가 들어가게 됐어요.”
제대한 아들은 ROTC 출신을 우대하는 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그 회사도 B급 규모였다. 그러나 아들은 군말 없이 4, 5년 열심히 다니더니 대리를 달았다고 했고, 연이어 놀라운 소식을 전해 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 발탁되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아버지는 아들이 운이 좋은가 보다고 말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그의 아들은 뒤틀리지 않고 제 그릇대로 자연스럽게 잘 자랐으니 좋은 인성을 가졌을 것이다. 또 좋아하던 기계제어 분야의 업무를 맡아 재미있게 궁리해 가며 즐겁게 일할 터이니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를 천거해준 사람도 첫 직장에서 그가 일하는 걸 지켜본 상사였다고 한다.
요즘은 부모들이 자녀를 생긴 대로 두지 않고 부모의 ‘기획 상품’으로 만들려고 한다. 남편 친구도 아마 극성 부모였다면 아들이 기계나 만지작거리며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꼴을 보지 못하고 여러 학원을 전전하게 했을 것이다. B급은 되니까 노력하면 A급으로 올릴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그렇게 쥐어짜서 성적이 약간 올랐다 한들 지금의 자리에 갈 수 있었을까.
기획 상품의 문제는 대부분 그렇듯이 부모의 기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다. 자생력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제시한 A안이 아니면 B안에 적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스스로 힘을 기른 사람만이 인생을 반전시킬 수 있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