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논설위원
말실수인가, 무능인가
스탈린의 책략으로 시작된 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딱 62년 되는 27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미국에서 “우리에겐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다. 미국은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동맹이다”라고 말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해야 할 만큼 한미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집권여당 대표이자 여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 차기 대선주자의 한 사람이 굳이 중국과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교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냉랭한 미중관계와 어느 때보다 좋은 미일관계를 의식해 한미동맹을 강조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라면서 “그렇다 해도 저렇게 얘기하는 건 향후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대표는 3월 한양대 강연에서 러일전쟁을 언급하며 “독도를 일본 사람들이, 일본 놈들이 동해상에서 러시아 함대와 전쟁하면서 교두보로 삼고자 빼앗아 갔다”며 ‘일본 놈’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으로 우리의 대일외교는 적잖은 후유증을 치러야 했다. 김 대표는 또 비슷한 무렵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봐야 한다”며 한미 당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줄타기하다 추락할 수도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을 때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시대의 역사적 유물”이라며 한미동맹의 급속한 복원에 불편한 심사를 표출한 적이 있다. 외교란 기본적으로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점을 실감케 한 장면이다. 수학자 존 내시의 ‘균형 원리’를 적용할 때 우리가 한반도 주변 강국 사이에서 최상의 접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보다 몇 배 더 신중한 검토와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 국제관계다.
김 대표는 어제 뉴욕 컬럼비아대 연설에서 “한국이 세계 10위권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때까지는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서커스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커스에서 줄을 타는 곡예단원이 하나의 동작에 무리하게 힘을 주어 균형을 상실하면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까지 알고서 하는 얘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