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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희균]백주부를 보는 다양한 시선

입력 | 2015-07-31 03:00:00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친정엄마는 워낙 요리 솜씨가 좋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상 가득 정찬을 차려내신다. 중고생 시절, 각종 반찬이 넘치는 내 도시락은 친구들 사이에 인기 만점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늘 ‘책가방보다 도시락가방이 큰 애’로 통했다.

그런 엄마가 얼마 전 우리 집에 오시더니 난데없이 카레라이스를 만드셨다. 만드는 내내 엄마는 “진짜 쉽다. 너무 쉬워. 이건 너도 할 수 있겠다”를 연발하셨다. 엄마답지 않게 왜 일품요리(一品料理)를 하시나 의아해 물었더니 답은 ‘백주부’였다.

카레라이스를 먹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려 들여다보니 무언가를 맛있게 먹는 조카들의 사진이 주르륵 떴다. 언니가 직접 만든 햄버그스테이크라는 자랑이 이어졌다. 전형적인 한식 반찬을 주로 하는 언니인지라 “웬일?” 하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엄마와 같았다.

세상에서 요리가 제일 힘들다며 두 아이의 이유식을 모두 사서 먹였던 친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만능간장으로 만든 아이들’이라며 잡채와 나물 사진을 올린 것도 그날이었다. 친구의 글에도 어김없이 백주부가 등장했다.

이쯤 되자 정말 그가 궁금해졌다. 좀처럼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없어서 풍문으로만 듣던 이름. 그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고깃집과 중국집에 가면 사진으로나 보던 얼굴. 대관절 그의 마력이 무엇이기에 내 주위 사람들을 일제히 변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백주부 혹은 백선생으로 불리는 백종원 씨를 탐구하기 위해 텔레비전 다시보기 서비스를 찾았다. 한 회분 방송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소면을 삶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회분을 더 보고 나자 왠지 나도 오징어볶음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휩싸였다. 요리 9단인 엄마도, 요리라면 질색인 친구도, 콩나물국도 요리책을 보며 공부해야 끓일 수 있는 나도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홀린 듯이 따라 하고 싶어진다.

비단 요리 이야기가 아니어도, 또 아줌마들의 모임이 아니라도, 요즘 그가 대화 소재에 오르는 자리는 적지 않다. 아마도 그의 인기 배경에 요리 솜씨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반전 요소가 녹아 있기 때문인 듯하다. 다소 무서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푸근한 말투,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인터넷 방송을 들었다 놨다 하는 센스, 15세 연하 탤런트와의 결혼, 외국까지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는 사업 수완 등 그를 보는 시선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이 가운데 내가 주목하는 대목은 뚝심 있게 한 노선을 잡아 그 분야에서 선두가 됐다는 점이다. 근래 몇 년간 이른바 먹방, 쿡방이 유행하는 동안 인기의 주인공은 웰빙 먹거리나 생소한 외국 음식, 그리고 유학파 셰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세월 전형적인 ‘식당밥’을 고집해왔고, 이를 소탈한 ‘집밥’이라는 형식으로 소개했다.

누구나 시도해봄 직한 요리를 인터랙티브(쌍방향)한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은 참여 가능성과 소통이라는 요즘 키워드와 마침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는 본인만의 아이템과 준비된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웃지 못할 사족 하나. 유독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과 백종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승전결이 정해져 있다. 바로 ‘기승전-대학’이다. 그가 의외로(?) 연세대를 나온, 나름대로 공부 좀 했던 사람이기에 더 인정과 호감을 얻는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럴 때면 ‘기승전-노력’, ‘기승전-준비’ 같은 말이 갑자기 공자 왈 맹자 왈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우물을 파는 뚝심이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잡는 법이니까.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