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 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을 먹고 있다
구멍가게는 누구나 수시로 드나들게 개방된 공간이다. 눈에 거슬리는 손님을 맞는 스트레스도 여간 아닐 테다. 이문이 많이 남는 물건을 얼른 사 가는 손님만 있으면 좋으련만, 동네 어느 집에 집들이라도 온 사람이 드문드문 그럴까, 코흘리개와 모주꾼이나 들락거린다. 종일 가게를 열고 있어도 장사가 별로이니 물건도 변변히 갖춰 놓지 못한다. 그러니 모처럼의 번듯한 손님도 그냥 나가버리고, 악순환이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러온 아이는 얼른 골라들지 않고 전기 닳게 냉장고 문을 오래도 열고 들여다본다. 사내들은 딸랑 소주 두어 병 사서는 평상에서 우렁우렁 오래도 떠들며 마시고 있다. 살림집에 ‘엄마’가 낸 구멍가게, 밥은 당연히 가게에 딸린 방에서 먹을 터. 코앞에서 펼쳐지는 단작스러운 장사, 외면할 수 없이 드러나는 제 가족의 생활 밑천에 화자는 울컥해서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에 대한 ‘엄마’의 즉각적인 대답은 아들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이놈아, 지금 네 목구멍에 넘어가는 밥이 어디서 난 줄 아느냐!’ 생의 구질구질함에 속이 꽉 막혔을 화자는 외려 후련하고 정신이 번쩍 났을 테다.
이런 구멍가게가 변두리 옛날 동네에는 아직 남아 있다. 시인은 대한민국의 빈곤을 모르는 첫 세대라는 1970년대생, 빈곤이 한층 싫고 힘들었을 테다. 이 시가 담긴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은 가난한 집에서 1막을 시작한 생은 2막도 3막도 똑같이 지리멸렬 이어지고, 그렇게 인생이 끝나리라는 비관적 세계관을 유머러스하고 서글프게, 또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독자 여러분께 작별인사를 드려야겠다. 오래도록 지면을 허락해준 동아일보에 감사드린다. 즐겁고 알찬 시간이었다. 여러분도 그러했기를!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