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오회분의 묘실(墓室)에 그려진 해신 달신 벽화.최원오 씨 제공
삼세판을 내리 지고 만 궁산선비. 집에 돌아와서는 자리에 드러누워 일어나지도 못하고 밥도 먹지 못했다. “왜 진지를 잡숫지 않는지요?” 자초지종을 들은 해당금. “얼싸 좋다. 정녕 좋구나. 없는 사람과 사느니 있는 사람 데리고 살면 좋지 않겠는가?” 궁산선비는 울컥 울음이 치밀었다. “여보시오, 낭군님.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아랫마을의 배 선비가 날 데리러 오면 종년을 나로 꾸며 놓고 낭군님이 희롱하고, 나는 한 다리를 저는 척하며 헌 치마를 입고 물을 길러 다니면 배 선비가 속아서 종년을 데리고 갈 것이오.” “그럼 그렇지. 얼싸 좋다. 정녕 좋구나.” 궁산선비는 해당금의 꾀를 칭찬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주머니를 터뜨렸다.
“해당금을 내어 주시게.” 궁산선비는 자기가 희롱하던 색시를 선뜻 내주었다. “옜다. 가지고 가거라.” “싫소. 저 마당에 물 긷는 종년을 나에게 주오.” 해당금과 종이 바뀌었음을 알아차린 배 선비의 대답이었다. 꼼짝없이 배 선비에게 가게 된 해당금, 닷새만 말미를 달라고 했다. 그 닷새 동안 소를 잡아 포육(脯肉)을 만들어 궁산선비의 옷에 넣어두고, 옷깃에는 명주실꾸리와 바늘 한 쌈을 이어두었다. “궁산선비를 섬 가운데에 버려둡시다.” 해당금을 데리러 온 배 선비가 제안했다. “그럽시다.” 섬에 갇혀 굶어죽게 된 궁산선비, 먹거리를 찾다가 문득 자신의 옷에서 나온 포육을 먹었다. 나중에는 명주실꾸리와 바늘로 낚싯줄과 낚시를 만들어 물고기를 낚아 먹었다. ‘가엾게도 되었구나.’ 어느 날 학 한 마리가 섬 가운데에 내려와 새끼를 치고 살다 그만 옥황전에 죄를 지어 잡혀가자 새끼 학만 남아 있었다. 궁산선비는 물고기를 낚아 죽어가던 새끼 학을 먹여 살렸다. 죄가 풀려 돌아온 어미 학은 궁산선비를 육지에다 내어놓는 걸로 그 은혜를 갚았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