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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에선 신격호 말이 곧 법… ‘후계 구도’ 언급 자체가 금기”

입력 | 2015-08-03 03:00:00

[롯데그룹 후계 분쟁]형제갈등 키운 ‘신격호 리더십’




“롯데에서는 ‘후계 구도’라는 말 자체가 금기였다.”

롯데그룹에서 핵심 요직을 지낸 A 씨는 경영 승계에 대한 공론화는 물론이고 준비조차 전혀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신격호 총괄회장(93)이 90세가 넘어서까지도 전권을 놓지 않으려 했고, 그 결과 형제간 갈등이 곪을 대로 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아버지의 ‘말’과 ‘글’에 기대 경영권 승계를 정당화하려 하고,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측이 신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가 온전치 않다고 반박하는 희대의 폭로극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A 씨는 “신 총괄회장은 아들들에게도 굉장히 엄했고 지시는 절대적이었다”며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엄청난 질책이 뒤따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조짐은 전혀 없었다”며 “만약 한 번이라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신 총괄회장 귀에 들어갔을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총괄회장은 2011년 2월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당시 회장이던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는 대신 한일을 아우르는 ‘총괄회장’이라는 직책을 만들어 올라앉았다. 경영에서 물러날 뜻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외부에선 ‘2세 경영 체제’가 막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신격호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오히려 창업주의 ‘신격화’가 진행된 셈이다. 또한 신동주, 신동빈 두 아들이 한국과 일본의 각 계열사 지분을 엇비슷하게 갖도록 하면서 ‘불안정한 평화’가 지속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2일 방송 인터뷰에서 “지난달 아버지가 동생을 때렸다”고 밝힌 것은 이런 제왕적 리더십의 단면을 보여 준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환갑을 맞은 그룹 총수를 때린 게 맞다면 충격적”이라며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신 총괄회장이 얼마나 아들이나 임직원에게 제왕적으로 군림해 왔는지 알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결국 모든 것을 ‘절대적 1인’에게 의지해 오던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이 고령에 이르자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됐다. 장세진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롯데 사태에 대해 “총수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한국 대기업의 고질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신 총괄회장이 경영 승계 시기를 좀 더 앞당겼어야 지금과 같은 형제 갈등을 방지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만 70세가 되던 1995년 2월 장남인 구본무 부회장에게 경영 승계를 완료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도 이건희 현 삼성전자 회장을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한 덕에 큰 갈등 없이 승계가 이뤄졌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 교수(경제개혁연구소장)는 “이번 롯데 형제 갈등은 결국 신 총괄회장의 실패”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롯데그룹은 일본의 지주회사가 한국 내 그룹을 지배하는 구조다. 재계 관계자는 “장남이 일본, 차남이 한국이라는 형태로 각자 경영을 해 왔지만 이것이 결국 분란의 씨앗이 됐다”며 “한국과 일본의 지분 구조를 완전히 분리하든, 산업군별로 그룹을 나누든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고야 best@donga.com·손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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