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내국인 해킹 의혹사건은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를 원하는 이병호 원장의 첫 시험대 지긋지긋한 ‘전과’ 굴레 벗고 존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불만스러워도,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의혹 해소해야 이 원장의 선택에 중간은 없다… 국정원 신뢰회복 여부 그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심규선 대기자
안의 판단은 이 원장의 몫이었지만, 밖에서 부는 바람은 그의 편이 아니다. 외풍의 발원지는 새정치민주연합이다. 내국인 사찰은 절대로 없었다는 임 씨의 유서도, 국정원의 해명도 소용없다. 사건이 불거졌을 때의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 한 방이 없는 공방을 보며 이제는 국정원에 대한 의혹 제기에도 ‘신사협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국정원발 국론 분열과 살라미식 공방은 졸업할 때가 됐다.
첫째, 국정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때다. 국정원은 누구의 것인가. 대한민국과 국민의 것이다. 집권당이 달라져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국정원은 집권당의 전리품이자, 야당의 공적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도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이념적 정권교체를 경험했다. 국정원을 5년간만 옹호하고, 5년간만 흠집 내는 것은 소아병적이다. 어느 정권이든 국정원을 국익 보호의 첨병으로 존중하고 잘 활용한 뒤 다음 정권에 넘겨줄 의무가 있다.
셋째, 문제를 제기하고 푸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국정원의 업무 속성을 존중해 가급적 드러나지 않게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만 터지면 칼로 째고 배 속을 들여다보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체력도 떨어지고 회복 시간도 길어진다. 내시경과 초음파 등으로 진단하고 약물이나 물리치료를 한 뒤 그래도 안 되면 수술이 옳다.
넷째,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묻는 게 순리다. 사이버전쟁이라는 말이 나온 지도,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 테러 방지 등을 위해 감청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도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은 10년 넘게 난공불락이다. 손발이 묶이다 보니 불법 탈법의 유혹에 빠진다. 합법적 감청, 철저한 감독, 위법에 대한 엄중한 처벌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이런 주장은 이 원장도 원하는 바일 것이다. 이 원장이 국정원을 떠나 19년간의 야인 시절에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요약하면 ‘국정원도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지만, 정치권도 국정원을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정원 안팎에서 기른 이 원장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 원장은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내국인 해킹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국정원을 수렁에서 구하든가, 그게 아니면 본인이 공언한 대로 깨끗하게 물러나야 한다. 중간은 없다. 6일 여야당과 전문가들의 국정원 조사가 고비다. 숨김없이 설명해 “은폐가 더 무거운 범죄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이 원장은 “이겨도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한다지만, 이겨야 국정원이 산다. 야당은 계속해서 문제를 삼을 것이다. 그래도 끈질기게 소명해 결국은 의혹을 털어야 한다. 신뢰 회복만이 소신을 실천할 기회를 줄 것이고, 그게 이 원장의 소명이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