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본에서 귀국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했다. 그는 ‘롯데가 일본 기업이냐’는 항간의 의구심을 의식한 듯 우리말로 “롯데는 95%의 매출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한국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 명의의 ‘신동빈 해임 명령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며 정면 대응할 뜻을 밝혔으나 그룹의 지배구조가 불투명해 어떤 결론이 날지 알 수 없다. 신 회장은 어제 신 총괄회장을 찾아갔지만 부자간, 형제간 갈등 봉합에도 실패했다.
롯데 경영권 분쟁은 지난달 27일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에 가서 경영권 탈환을 시도했다가 신 회장 측의 반격으로 하루 만에 실패하면서 막장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신 전 부회장이 다시 한국에서 “신동빈을 한국 롯데 회장으로 임명한 적이 없고 용서도 할 수 없다”는 신 총괄회장의 동영상을 공개해 혼란은 증폭됐다. 2011년 신 총괄회장이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을 한국 롯데 회장으로 임명하고도 지금 부인하는 것을 보면 93세의 고령인 그의 건강이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연매출 83조 원에 계열사 80여 개, 국내 12만 명과 해외 6만 명의 임직원을 둔 재계 서열 5위인 한국 롯데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흔들리는 상황을 보는 국민은 억장이 무너진다. 일본말로 의사결정을 하는 오너와 가신들로 구성된 일본 ‘막부(幕府)’ 형태의 회사라는 말이 나오고, 롯데그룹 전체 주식의 0.05%만을 보유한 오너의 ‘황제 경영’, 베일에 싸인 지배구조, 부실한 위기관리 등이 노출되면서 반(反)기업정서가 일어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경제 살리기의 동력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광복절 기업인 특별사면이나 가석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기업들이 이번 사태의 여파로 위축되면 경기가 얼어붙을 우려도 적지 않다.
경영권 분쟁 초기 반짝 상승세를 나타낸 롯데 계열사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분쟁이 길어지면 롯데의 기업신용등급도 낮아져 ‘오너 리스크’ 때문에 기업가치가 추락할 수 있다. 롯데그룹의 경영권은 상법에 따라 주총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지만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오너의 전횡과 독단 같은 전근대적인 행태는 바로잡아야 한다. 신동주, 신동빈 형제도 더는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