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속의 육즙이 기름과 함께 표면으로 스며나올 때가 고기를 다시 뒤집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동아일보DB
김성규 셰프
시작한 지 4개월쯤 되었으니 어림잡아 2000개의 패티를 구웠지만 여전히 패티를 만족스럽게 굽는 일이 쉽지 않다. 패티를 익히는 조리도구로는 그릴도 있고, 석쇠도 있고, 프라이팬도 있는데 내가 사용하는 것은 두께 6mm의 사각 철판이다. 철판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좋은데 가스 불이 직접 닿는 주변으로 온도 차가 크지 않으면서도 넓게 달궈지기 때문이다. 철판의 두께가 얇으면 불에 직접 닿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온도 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뭘 끓이는 게 아니고 직접 판 위에 올려놓고 조리하는 음식은 일관된 조리가 어렵다. 또 철판이 두꺼우면 열을 보존하는 시간도 늘어나 얇은 팬에 비해 천천히 달궈지고 천천히 식어 열전달 시간을 통제하기가 쉽다.
패티 굽는 기술은 매번 아주 조금씩 발전하였지만 그동안 2000개의 패티를 구웠기 때문에 만약 4개월 전의 패티를 굽는 내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본다면 ‘아니 저렇게 굽다니!’라고 경악할 만큼 격차가 있을 것이다. 요즘 내가 패티를 익힐 때의 과정은 이렇다.
고기를 뒤집고 익히는 것도 좀 더 정교해졌다. 첫 번째 닿은 면이 타지 않을 만큼 갈색을 띨 때쯤 한 번 뒤집고는 불의 세기를 3분의 1쯤으로 줄인다. 1분쯤 지나 패티 안의 육즙이 기름과 함께 위 표면으로 스멀스멀 스며 나올 때가 다시 뒤집을 적당한 타이밍이다. 그렇게 뒤집고는 이제 불을 아예 꺼버린다. 아직은 뜨거운 철판이 고기 패티 안으로 열을 전달하는 이 짧은 시간이 치즈를 패티 위에 올려 보기 좋게 녹아내리게 하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막강 더위로 푸드카 내부의 온도가 40도까지 치솟는 요즘에는 패티 조리시간을 더 짧게 잡아야 한다. 냉장고에서 고기 반죽을 꺼내 동그랗고 납작하게 모양을 잡고 철판을 가열하는 동안 이미 고기 패티의 온도가 실온 수준으로 높아지는 탓이다. 반대로 고기 패티가 너무 차가우면 철판을 최대한으로 달궈놓았다가 패티를 올린 직후 곧바로 불을 약하게 낮추고 은근히 가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겉은 타고 속은 익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약한 불로 지나치게 오래 가열하면 고기의 육즙을 다 날려버려 고기가 퍽퍽해진다.
아니 고기 하나 굽는 게 뭐 대수라고 이렇게 지루하게 시시콜콜 써내려 가다니! 라고 생각할 독자가 있을 법하다. 하지만 어쩌랴. 무언가를 완벽에 가깝게 한다는 것은 지루해 보이는 일을 매 순간 즐기면서 매번 아주 조금씩 발전을 도모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 그러다보면 “햄버거 먹고 감동하기는 평생 처음”이라는 칭찬도 때로 듣게 된다.
며칠 전 경기 성남시에 사는 40대 중반의 부부가 식당 창업을 하고 싶다며 푸드카를 찾아왔다. 햄버거 2개를 시켜 나눠 먹고도 한참을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남편 A 씨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하려고 하는데 프랜차이즈 체인점은 초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직접 배워 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내 조언은 “간단해 보이는 요리 하나를 정해 깊이 파보시라”였다. 요즘은 어딜 가나 프랜차이즈 체인점이 거리에 넘쳐난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식당 창업을 하기엔 좋은 조건이다. 맛이 하향 평준화되어 있어 다른 곳과 차별화하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필자(44)는 싱가포르 요리학교 샤텍 유학 뒤 그곳 리츠칼턴호텔에서 일했다. 그전 14년간 동아일보 기자였다. 경기 남양주에서 푸드카 ‘쏠트앤페퍼’를 운영 중이다.
김성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