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동물용 의약외품 제조업체를 설립하기 위해 작년 9월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신고 서류를 냈다. 법률에는 10일 안에 처리하도록 돼 있지만 담당 공무원은 “공장등록증명서 주소지가 상가 건물로 돼 있다” “사업지 용도가 소매점이다” 등등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3번이나 서류를 반려하면서 두 달 넘게 시간을 끌었다. A 씨가 “더 지연되면 파산할 수 있다”고 사정했더니 담당자는 “100여 건의 민원을 처리 중이니 다른 업체들에 먼저 진행해도 된다는 동의를 받아 오라”고까지 했다. 결국 A 씨는 감사원에 민원을 제기하고서야 신고를 마쳤지만 사업에 상당한 차질을 빚은 뒤였다.
A 씨를 상대한 공무원은 “교육과 출장으로 바빠서 그랬다”고 해명했지만 관련 서류는 17쪽에 불과했다. 작년 11월 한 달간 감사원이 국토교통부 등 60개 기관을 대상으로 인허가 처리 지연 등 ‘소극 행정’에 대해 감사한 결과 39건이 적발됐으니 전국 곳곳에 드러나지 않은 공무원들의 한심한 ‘갑질’이 널려 있을 것 같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에서는 엘리베이터 관련 용역 입찰 과정에서 낙찰받은 기업에 엉뚱한 서류를 요구해 계약을 포기하게 만들고, 기존 업체가 다시 계약하도록 한 일도 있었다. 기업 활동의 목줄을 쥔 현장 공무원들이 특정 업체와 유착하거나 뇌물을 받고 특혜를 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300개 기업을 조사해 보니 규제개혁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통 및 피드백 미흡’(27.3%)과 ‘공무원의 전문성 결여’(21.3%)가 꼽힌 것을 보면 개혁이 어디서 막히는지 알 수 있다.
규제는 공무원들의 밥그릇이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규제개혁을 부르짖어도 6급 7급 등 아래로 내려갈수록, 지방자치단체로 내려갈수록 관련서류를 깔고 앉아 있기만 한다면 규제개혁이 될 리 없다. 법이나 시행령에는 없지만 현장을 옥죄는 ‘그림자 규제’, 공무원들의 불합리한 행정지도 관행까지 바꿔야 규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