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배 시인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명시를 순례하는 신품명시(神品名詩)를 수요일마다 연재합니다. 1961년 등단한 이근배 시인은 시와 시조를 아우르며 역사와 문화를 시에 담아 왔으며 특히 한국 고미술에 해박하고 벼루 등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합니다. 》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68호.
숙종 3년 시월상달 휘영청히 밝은 날.
고려 땅에 죄수는 하나도 없어
감옥 속은 모조리 텡텡 비이고,
그 빈자리 황국(黃菊)처럼 피는 햇살들.
그 햇살에 배어나는 단군의 웃음.
그 웃음에 다시 열린 하늘의 신시(神市)!
그 신시에 물들여 구은 청자들!
운학문(雲鶴紋)의 운학문의 고려청자들!
무딘 붓으로 어찌 다 이르랴, 이 겨레 태어나면서부터 하늘손을 빌려 쓰고 그리고 깎고 다듬고 빚어내어 인류의 눈과 가슴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새겨준 저 불멸, 장엄의 내 나라 문화유산에 바치는 헌사를.
이 땅의 시인들 다투어 모국어의 가락으로 빛깔과 향기를 노래해 왔거니 그 신품에 값하는 빼어난 시를 찾아 깊고 먼 날의 시간으로 떠나고자 한다. 그 첫 순례로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을 골랐다.
올해 탄신 100주년을 맞는 미당(未堂)은 일찍이 비색(秘色)의 청자빛깔에 흑백상감으로 구름이며 학을 수놓은 세계 도자사의 맨 윗 봉우리를 우러르며 “단군의 웃음에 열리는 하늘의 신시”에서 구웠으리라고 짐짓 한 수를 뽑아낸다. 누가 있어 여기에 한 글자를 더 보태고 뺄 수 있으랴.
이근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