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 강원 홍천군이 개최한 ‘귀농·귀촌교실’에서 필자(서 있는 사람)가 농업·농촌의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귀농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 Y 씨(45·경기 안산시)의 푸념이다. 그는 7월 중순 강원 홍천군이 개최한 2박 3일 일정의 ‘귀농·귀촌학교’에 참가해 귀농·귀촌 멘토들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희망적인 얘기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귀농 6년 차인 필자 또한 이날 멘토로 참여해 농업·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요지는 이렇다.
며칠 뒤인 7월 21일 ‘귀농어·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단편적, 개별적으로 실시되었던 각종 귀농·귀촌 지원책이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Y 씨가 기대했던 희망적인 귀농·귀촌을 이야기하기에는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왜 그런지 몇 가지만 들여다보자.
경기 분당신도시와 인접한 광주시 오포읍의 한 아파트단지에 살면서 서울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L 씨(54)는 퇴직한 뒤 귀농하고자 해도 각종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귀농어·귀촌지원법 시행령에는 귀농어업인의 요건을 ‘농어촌 지역으로 이주하기 직전에 농어촌 외의 지역에서 1년 이상 주민등록이 되어 있던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농어촌은 전국의 읍면을 말한다. 광주시 오포읍에 사는 L 씨가 귀농 지원을 받으려면 1년 이상 읍면이 아닌 동(洞)지역으로 이주해 살든가 아니면 위장전입을 해야 한다.
한 귀농·귀촌 전문가는 “수도권에서는 읍면지역이라 하더라도 읍면 중심지나 택지개발지구 등은 이미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해 용도지역상 도시지역(주거·상업·공업지역)으로 지정된 곳이어서 사실 농어촌으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더구나 명백하게 농업에 종사한 적이 없는 직장인, 자영업자 등이 단지 수도권 읍면지역에 거주했다는 이유만으로 귀농인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잘못된 규제”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농어촌의 정의를 개정하든지 아니면 예외조항을 두어 L 씨 같은 이들을 구제해주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귀농어·귀촌지원법은 또 5년 단위의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 귀농어·귀촌 실태조사와 통계 작성 관리를 의무화했다. 각종 지원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수이지만 이 또한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귀농어·귀촌지원법 시행 이후 파생될 각종 부작용 또한 우려스럽다. 2010년 이후 불붙은 귀농·귀촌 열풍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특히 부동산 개발업자나 건축업자가 귀농·귀촌 교육 및 컨설팅을 내걸고 귀농·귀촌박람회에 참여하거나 자체 행사 개최를 통해 땅 매매 및 건축 관련 호객행위를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하다. 아울러 ‘정부 예산이나 빼먹자’는 식의 귀농·귀촌 단체나 법인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는 것과 귀농·귀촌 네트워크를 결성해 압력단체나 정치세력화하려는 움직임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귀농어·귀촌지원법이 농촌과 농업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려면 이처럼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는 무엇보다 열린 자세로 다양한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