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 사진부 차장
인터넷 포털 사이트 속 그의 모습은 아주 단조로웠다. 똑같은 사진이 수백 장 떠 있다. 호텔 집무실로 추정되는, 햇볕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곳에서 웃으면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금빛 무늬 가구가 배경으로 보이는 사진도 있고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배경을 지운 사진도 있지만 모두 같은 사진이다. 이전의 웃음기 없는 증명사진과는 확연히 다르다. 롯데그룹이 2002년 12월쯤 언론사에 제공한 이 사진은 얼마 전까지 신 총괄회장의 동정 보도에 항상 이용됐고 상징처럼 굳어졌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롯데 오너의 이미지가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던 신 총괄회장의 모습은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나타났다. 당시 일본 롯데홀딩스를 방문해 차남 신동빈 회장 등 6명의 이사를 해임한 뒤 휠체어를 탄 채 입국하는 순간 취재진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포착됐다. 곧이어 포토라인은 무너졌고 93세 노인은 젊은 기자들과 경호원 사이에 파묻혀 버렸다. 이제 인터넷과 국민의 머릿속에 롯데 창업주의 얼굴은 2002년의 웃는 모습이 아니라 아수라장 속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다. 신 총괄회장의 이미지 추락이 시작된 것이다.
일주일째 오너 가족이 신 총괄회장을 만나기 위해 들락날락하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로비는 피의자 소환을 기다리는 검찰청사처럼 기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오너 가족은 지하 7층까지 이어진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카메라를 잘 피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지난달 30일에는 호텔 로비에서 카메라 상태를 확인하고 있던 대학생 인턴기자에게 경비 책임자가 자기 얼굴이 나온 거 같으니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했다. 젊은 여기자에게는 “바닥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치지 마라”고 소리쳤다. 로비가 조용할 리 없다. 일요일인 2일에는 가족여행을 온 일본인 관광객이 호텔 측에 항의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추억 만들기 여행이 차질을 빚었다는 안타까움이 엿보였다.
홍보 실무자들이 나설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보니 롯데 오너 일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기업 이미지는 악화되고 있다. 어릴 적 소풍 가방에서 꺼내 먹던 롯데 과자의 달콤한 추억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