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시장, 돈이 움직인다]<1>저금리시대, 대안 찾는 부자들
하지만 은행 금리가 계속 떨어지면서 이자로 생활비도 충당 못해 예·적금을 깨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재테크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다시 짰다. 예·적금에는 자산의 15% 정도만 남겼다. 그 대신 펀드, 채권, 주가연계증권(ELS)에 자산의 40%를 분산 투자하고 45%는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는 “은행에 예금 10억 원을 넣어봐야 세금 떼고 손에 쥐는 돈이 월 100만 원이 안 되는데 어떻게 계속 묻어두겠느냐”라고 말했다.
초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보수적인 자산가들이 마침내 위험을 감수하고 나섰다. ‘금리 2%’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지면서 은행에만 돈을 맡기던 자산가들도 금융투자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이다. 설문에 응한 자산가 105명 중 26.6%는 최근 1년 새 금융투자 비중을 확대했다고 응답했으며 3명 중 1명(32.6%)은 금융투자 비중을 앞으로 더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6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 정기예금은 올해 들어 6개월간 14조6000억 원이나 감소했다.
예·적금을 떠난 돈은 국내외 주식형 펀드와 채권, ELS 등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올해 들어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3조 원 이상 늘었고 올 상반기(1∼6월)에 ELS는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늘어난 47조3453억 원어치가 발행됐다. 자산가들은 최근 1년 내 가장 큰 이득을 안겨준 투자처로 국내 주식형펀드(36.9%), ELS(21.0%), 해외 주식형펀드(14.2%)를 꼽았다.
서울 잠실에 사는 자산가 백모 씨(62)도 예금 30%, ELS 40%, 연금 30%로 유지하던 투자 포트폴리오를 3월 기준금리가 사상 최초로 연 1%대로 떨어진 뒤 조정했다. 예금 비중은 10%대로 낮춘 대신 ELS 투자 비중을 60%로 늘렸다. 최근에는 브라질 채권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백 씨는 “브라질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12∼13% 정도 되는 데다 비과세”라며 “헤알화 가치가 하락했지만 점차 정상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바로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백 씨처럼 자산가들은 국내 시장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적극 눈을 돌리고 있었다. 향후 비중을 늘리려는 투자 대상을 묻자 국내 주식형펀드(28.7%) 다음으로 해외 주식형펀드(16.2%)를 꼽았다. 관심 지역으로는 중국(19.7%), 유럽(18.4%), 북미(14.4%), 일본·호주(12.5%) 등을 꼽았다. 신현조 우리은행 투체어스 잠실센터 부지점장은 “최근 들어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증시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설문 결과에서 나타난 것처럼 자산가들은 ‘역발상 투자’에 주목하고 있었다. 최근 증시가 폭락한 중국과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로 혼란스러웠던 유럽을 투자 대상으로 꼽는 등 위기를 곧 투자 기회로 보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가격이 급락한 금에 투자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50대 자산가는 “금은 안전자산인 데다 가격도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며 “주변에 결혼하는 자식이 있는 친구들에게 예물보다 금을 사라고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일부는 부동산 투자 비중 줄여
자산가들의 또 다른 특징은 ‘지키는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일정 부분 리스크를 지더라도 외부 변수에는 발 빠르게 대응한다. 백 씨는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일 수 있는 만큼 금리 인상 신호가 나오면 투자상품에서 돈을 뺄 생각이다. 그는 이 돈을 은행에 잠시 맡기거나 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할 계획이다.
일부 자산가들은 현금화가 힘든 부동산 투자를 줄이고 있다. 대기업 임원을 지낸 한 대학교수는 지난해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를 처분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연로한 부모를 모시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부동산시장이 하락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장윤정 yunjung@donga.com·박민우 기자
신지수 인턴기자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