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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뒤태가 고운 사람

입력 | 2015-08-06 03:00:00


남편과 길을 걷다가 가끔 내 뒷모습이 어떤지 봐달라며 남편을 앞질러 저만치 걸어갈 때가 있다. 남의 뒤태를 보면서도 정작 나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궁금해서 걸음걸이가 반듯한지, 보기 흉한 데가 없는지 살펴보라고 하면 남편의 대답은 항상 짧고 심드렁하다. “좋아, 좋아. 누가 보면 30대인 줄 알겠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면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헤어진 뒤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제 나이를 보게 될 때가 있다. 어딘지 모르게 세월의 무게에 눌려 엉성하고 구부정하거나 처져 있어 문득 애잔해진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정직한 것은 외모뿐 아니라 내면에서도 그러하다. 대기업의 인사팀장을 지낸 지인은 신입사원을 면접할 때 면접을 끝내고 나가는 뒷모습을 본다는 말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공손하게 인사하고 조신하게 앉아서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을 잘하는 것이야 기본이다. 그러나 면접이 끝나고 문 닫는 자세에서 그 사람의 진짜 일면을 본다는 것이다. 보통은 긴장된 분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뒤도 안 돌아보고 재빨리 나가버리기 일쑤인데, 돌아서서 침착하고 정중하게 문을 닫으면 더 호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사람이 떠난 후 남긴 것들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적의 뒷모습인 것 같다. 나는 최근에야 ‘유품 정리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일을 20년간 해온 사람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란 책을 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비로소 그런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유품 정리를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쓴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이다.”

최근에 너무 식상하다고 비판해온 재벌 드라마를 리얼 뉴스로 보면서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우리 서민들은 셈하기조차 어려운 어마어마한 숫자의, 아직은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니 유산도 아닌 재산과 권력을 놓고 다투는 한 재벌가의 형제를 보면서 죽기도 전에 미리 자신의 뒷모습을 봐버린 93세 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유추해본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도 가끔은 뒤태를 살펴볼 일이다. 서랍정리 잘 해놓고, 부치지 않은 편지 부치고, ‘사랑한다, 고맙다’ 같은 말도 입안에 두지 말고 자주 표현하면서 말이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