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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운명이 된 연기… 아우라 넘치는 악역으로 빛나

입력 | 2015-08-06 03:00:00

[밀레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숲 길’]배우 김영철, 충남 아산시 봉곡사 소나무숲 트레킹




배우 김영철 씨(왼쪽)와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충남 아산 봉곡사 인근 소나무 숲길에 함께 섰다. 열정을 앞세워 자신의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오랜 상처를 딛고 자란 소나무들 아래서 크게 웃었다. 아산=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이름을 얻었지만 그 대신 눈을 잃었다고나 할까요.” 소나무 숲길에서 그가 말했다. ‘궁예’로 이름을 떨쳤던 배우 김영철
씨(62·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 2000년 ‘태조왕건’의 궁예 역으로 KBS 연기대상을 받았던 김 씨는 당시 한쪽 눈을
가리고 연기했다. 한쪽 눈만으로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낸 그의 연기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시력이 떨어졌다. 촬영 당시 가렸던 왼쪽 눈은 0.8에서 0.2까지 떨어졌고 오른쪽 눈의 시력도 함께 나빠졌다. 일시적인
현상일 줄 알았으나 이후 10여 년간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안경을 쓰고 지내다 최근 라식수술을 받았고 그때서야
시력이 회복됐다.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는 법이지요.” 지난달 28일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일원 ‘봉곡사 천년의
숲길’에서 그는 함께 걷던 산악인 엄홍길 대장(55)의 절뚝이는 오른발을 보며 덧붙였다. 엄 대장의 종아리에는 커다란 수술자국이
남아 있다. 1998년 안나푸르나(해발 8091m)에서 추락하는 셰르파를 구하려다 줄에 감겨 엄 대장의 오른 발목이 돌아갔다. 엄
대장은 지금까지도 오른발을 잘 쓰지 못한다. 엄 대장은 이 발로 8000m 16좌 등정의 위업을 달성했다. 발을 다친 이후
최근까지 오른 8000m급 봉우리만 11개에 이른다. 숱하게 좌절했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엄 대장은 “발목이 아프다”며 오른발을
보여줬다. 발목은 부어오르고 있었다. 》



‘봉곡사 천년의 숲길’은 봉곡사 주변 우거진 소나무 숲길을 시작으로 인근의 갈매봉, 장군봉 등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능선으로 된 길이다. 김 씨와 엄 대장은 완만한 능선 길을 두 시간여 동안 함께 걸었다.

김 씨의 눈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님이 ‘맞고 다니지 말라’며 권해 복싱을 시작했어요. 그 즈음 김기수 씨가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꺾고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이 됐습니다. 한국 최초의 세계 챔피언이었죠. 당시 복싱 열기가 대단했어요. 그를 보면서 저도 복싱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는 전국체전 출전을 목표로 강훈련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연습 경기를 할 때였다. 3회전 공이 울려 경기는 끝났다. 그러나 경기가 끝났음을 미처 몰랐는지 상대의 펀치가 날아들었고 그는 그 펀치에 맞아 10초간 정신을 잃었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며 코를 푸는 순간 왼쪽 눈이 크게 튀어 나왔다. 훗날 ‘궁예’ 역을 하면서 가렸던 그 왼쪽 눈이었다. 놀란 선배들과 함께 수건으로 눈을 싸매고 집으로 간 뒤 1주일을 입원했다. 퇴원한 후 곧바로 다시 복싱을 하겠다며 훈련에 매달릴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전국체전 출전은 결국 무산됐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는 유도를 했다. “공부를 너무 안 했어요. 맨날 싸움만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서울 명동서 연극을 한 편 보았는데 그 순간이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했다.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극적인 무대 분위기 등이 그를 사로잡았다. “아, 이게 내가 할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배우가 될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요. 다음 날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1973년 민예극단에 입단했다. “최불암, 이대근 씨 등이 출연한 ‘고려인 떡쇠’라는 연극에서 엑스트라 역할을 했어요. 죽었다가 옷 갈아입고 나와서 또 죽고 하는 역이었어요. 하하. 이 작품이 저의 데뷔작인 셈이죠.”

허규 민예극단 대표가 연출한 이 작품은 고려 말 왜구에 맞서 군사를 일으키는 척하면서 사실은 왕위를 찬탈하려는 세력에 떡쇠와 백성들이 저항하는 내용이다. 그는 돌아가신 허 대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허 선생님께서 저보고 무대 위에서 로봇처럼 몸이 딱딱하다며 현대무용을 배워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당시 육완순 선생님에게서 6개월간 현대무용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후 1977년 TBC 탤런트 공채에 응모해 방송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배우 인생 40여 년이다. 수많은 방송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기억나는 작품으로 TV 드라마 ‘태조왕건(궁예 역)’ ‘아이리스(백산 역)’, 영화 ‘달콤한 인생(강 사장 역)’을 꼽았다. “다 내 작품이지만, 그래도 이 작품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났으니까….”

‘달콤한 인생’에서 극 중 이병헌에게 던진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대사나 ‘태조왕건’에서의 ‘관심법’ ‘옴마니 반메홈’ 등은 유행어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김영철 씨는 일주일에 세번 정도 집 근처 청계산을 찾는다고 한다. 젊어서부터 복싱 유도 등을 했던 그는 요즘에는 골프와 등산을 주로 한다고 밝혔다. 아산=김경제 기자kjk5873@donga.com

“저에게는 그래도 ‘궁예’가 중요했죠 뭐. 여전히 사람들이 저를 보면 궁예, 궁예 합니다. 그런데 저는 또 이게 슬픕니다. 궁예라는 틀에서 저를 풀어주고 싶어요.”

‘궁예’를 비롯해 ‘백산’ ‘강 사장’ 등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녔다. 광기와 폭력을 내면에 감추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악역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아우라(독특한 기운이나 분위기)가 있는 악역’이라고 표현했다. “성격과 인물에 따라 다르지만 악역은 악역대로 빛나는 역할입니다. 선한 인물은 선한 대로, 악한 인물은 악한 대로 역할에 따라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노숙자든 대통령이든 그런 고유의 분위기들을 배우가 다 만들어 내야죠.”

하지만 그가 보여준 남달리 강렬한 연기들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혹시 그에게도 그런 인물들의 성격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에 대해 그는 “아마 그런 게 내 안에 잠재돼 있겠지요”라며 허허 웃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로 그의 연기 수련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런 인물들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배웁니다. 또 살아오면서 다양한 인물들하고 부딪쳤을 때 겪는 경험을 내 안에 축적해 놓습니다. 그런 것들을 꼭 써먹어야지 하고 마음먹지 않더라도 인생의 그런 여러 가지 달고 쓰고 맵고 하는 여러 경험을 내 안에 담아두면 그게 연기를 통해서 나오더라고요.”

결국 분노와 광기 등 특정 감정에 대한 몰입이나 이해보다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에 대한 폭넓은 관찰과 이해를 추구하고, 이런 많은 감정들이 내면에서 소화되어 자연스럽게 연기가 배어 나오게 한다는 설명으로 들렸다. 삶에 대한 폭넓은 관찰과 이해가 그의 연기의 밑바탕이라는 설명이었다.

캐릭터에 대한 정밀한 분석도 병행한다. “요즘도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그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선후배들에게 연락합니다. 그러면서 그 인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인물에 대한 내 생각의 빈 곳을 발견하게 되고 빈틈을 메우게 됩니다.”

그는 “배우가 인물을 창조한다고 하지만 결국 모방입니다. 저 사람에게는 저런 성격이 있구나 하고 관찰하고 그런 인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그는 “사람이 여러 가지를 좇을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한 가지를 추구해야 합니다”라며 다시 엄 대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엄 대장님도 자신이 좋아하는 산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말하자 엄 대장은 “당연하신 말씀”이라고 동의하며 말을 이었다. “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연과의 사투라고 하는데 사실은 자기 자신과의 사투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자신과 사투를 벌일 때까지 몰두하게 하고 또 자신과의 사투에서 승리하게 하는 것인가. 김 씨의 말에 따르면, 또 엄 대장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열정이었다. 그 열정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애정이었다. 여기까지 듣자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애정에서 비롯된 열정은 인생의 많은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힘겨운 오늘을 사는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다. 김 씨는 말했다. “누군가가 끌어주어서 정상에 설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이 해내야 합니다.”

돌이켜 보면 김 씨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열정이 아니던가. 한순간에 연기자로서의 운명을 직감한 뒤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다시피 그 길을 걸어 왔다. 눈이 나빠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고 후배들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 점은 엄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신을 던지면서 살아온 이들이었다. 열정에 따라 인생의 방향을 정했으되 세밀한 노력으로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내리막에 접어들었지만 엄 대장의 발걸음은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 구부러지지 않는 발목을 스틱에 의지해 걸었다. 코스를 마치고 내려오니 봉곡사 입구의 시원한 약수가 반겼다. 김 씨도 엄 대장도 시원한 물맛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김 씨는 “예전에 (승려 출신인) 궁예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전국의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주지 스님들이 밥 먹고 가라고 했었지요. 허허”라고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다시 봉곡사 입구의 오래된 소나무 숲길에 두 사람이 섰다. 전국의 명산을 많이 다녀본 엄 대장도 “이곳에 정말 소나무가 많다”며 감탄했다. 그러나 그 잘 자란 소나무 중에는 일제강점기 송진 채취로 줄기에 생채기를 안고 있는 소나무가 많았다. 그곳에 땀 흘려 산을 넘어온 두 남자가 섰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었다. 정상에 서 본,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많은 것을 걸었던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상처를 딛고 오래오래 더 크게 자란 소나무들이 그들을 축복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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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비 맞으면 저체온증… 땀 배출 잘되는 기능성 우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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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와 밀레가 함께하는 열두 길 트레킹




아산=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