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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묵화(墨畵)

입력 | 2015-08-07 03:00:00


 《 나민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가 매주 금요일 ‘시가 깃든 삶’으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나 교수는 따뜻한 감성으로, 잘난 시가 아니라 좋은 시를 찾아다니는 여성 평론가입니다. 그가 소개하는 한 편의 시는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위안이 되어 줄 것입니다. 》





묵화(墨畵) ―김종삼(1921∼1983)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묵화’는 먹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당연히 흑백이다. 여백도 많다. 채색도 디테일도 빠졌으니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이 간결한 세계에 시인이 그려 놓은 것은 단 둘뿐이다. 물 먹는 소 한 마리, 그리고 그 곁에 선 할머니뿐이다.

아니, 틀렸다. 사실 시인이 그려 놓은 것은 단 하나다. 소와 할머니는, 서로의 부은 발잔등을 통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의 이름은 ‘적막함’이다. 적막함이 좋은 것인가? 예전에는 적막하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적막함은 이미 우리 인생에 들어와 있는, 우리의 일부이다. 찾아왔거나 언젠가는 찾아올 이 느낌은, 채색도 디테일도 필요 없다. 그저 간결하게 적막하기만 한 적막이어서 마치 ‘묵화’와도 같다. 그래서 바로 이 적막 때문에 작품의 제목은 ‘소와 할머니’도 아니고, ‘부은 발잔등’도 아니고 ‘묵화’가 되었다.

참 짧은 작품이지만 이 시는 많은 생각을 이끌고 온다. 게다가 적막한 당신이라면, 이 시를 정독할 필요가 있다. 자, ‘소’의 자리에 당신을, ‘할머니’의 자리에 시를 놓고 다시 읽어 주시길. ‘소와 할머니’의 관계는 정확히 ‘당신과 시’의 관계에 해당한다. 하루 종일 당신은 고단했고 내일도 고단할 것이다. 이런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페이스북에서 웃고 있는 잘난 누군가의 ‘좋아요’ 버튼이 아니다. 당신을 위로할 것은 기쁨이 아니라 당신의 부은 발잔등을 알고 있는 한 줄의 시이다. 기진맥진한 마음을 부여잡고 어찌할 줄 모를 때는 이렇게 한번 간결한 그림이 되어 보자. 우리의 고단에는 적막이 필요하다.




나민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