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는 말한다]<4>귀신같이 냄새 잡아내는 CSI견
서울지방경찰청 체취증거견 나로가 김영기 경사와 함께 훈련장에서 피 냄새를 향한 목적의식 갖기 훈련을 하는 모습.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실종 사건을 맡은 형사는 낚시터를 찾아갔다. 피해 여성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경찰 200여 명이 투입됐다. 저수지 주변의 작은 조약돌 밑, 버려진 라면 봉지 안까지 샅샅이 뒤졌다. 긴 막대기로 무릎 높이의 잡초를 구석구석 찔러가며 살폈다. 경찰특공대 소속 잠수부들은 저수지 안에 들어가 손으로 바닥을 훑었다. 5시간 가까이 수색했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섯 살 수컷 래브라도 레트리버 ‘메시’가 현장에 왔다. 메시는 땅에 코를 박고 지그재그로 휘젓고 다녔다. 5분 만에 땅속에 반쯤 파묻혀 있던 검붉은 목장갑 옆에서 연신 짖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 피가 굳어 시커멓게 변한 흔적이 보였다.
김 씨는 공범과 함께 목장갑을 낀 채 피해 여성들을 둔기로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시신은 차 트렁크에 넣고 강가로 옮겨 유기했다. 수사는 사람이 했지만 단서는 개가 찾았다. 개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결정적인 단서였다.
범죄 현장의 다양한 냄새를 인간은 잘 구별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인간보다 1만 배 후각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개의 도움을 받는다. 한 번 맡은 냄새를 기억해 범인을 추적하거나 실종자들을 찾는 ‘체취증거견(Human Scent Evidence Dog)’이다. 체취증거견은 잠깐 스치듯 맡은 냄새도 오래 기억해 제3의 장소에서 해당 냄새를 정확히 식별한다. 범인의 신체가 닿은 물건에서 체취를 기억해 범인과 증거를 찾는다. 냄새를 단서로 수사하는 ‘과학수사견’인 셈이다. 국내에는 셰퍼드 6마리, 래브라도 레트리버 4마리, 말리누아 3마리 등 총 13마리가 임무를 맡고 있다.
체취증거견들은 냄새 식별 능력 강화를 위해 특화된 훈련을 받는다. 특히 평소 썩은 피가 묻은 물건들을 찾아내는 훈련을 반복한다. 시체에서 풍기는 냄새와 비슷한 썩은 피를 향한 목적의식 강화 훈련이다. 숙달된 개들은 땀이나 침 등 타액으로도 특정인의 냄새를 구별하는 기술을 습득한다. 올해 4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시신을 찾은 것도 체취증거견이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체취증거견의 전문성을 인정해 이들의 ‘동물적 판단’을 DNA나 지문처럼 법적 증거로 인정한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체취증거견의 판단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아 활용 영역도 실종자 및 시체 수색에 그치고 있다. 경찰은 “관련 장비를 보강하고 다양한 체취 선별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선진 과학수사 기법의 한 축으로 자리 잡도록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