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워싱턴 특파원
미국 사회는 처음엔 트럼프 특유의 막말을 쇼맨십 정도로 여기는 듯했지만 분명한 대세론을 형성하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놀라는 눈치다. 특히 워싱턴 정가에서 만난 주류 미국인들은 더욱 그렇다. 대사를 지낸 한 고위 공무원은 “요즘 우리끼리 이란 핵협상 빼고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게 트럼프 인기의 비결”이라고 전했다.
미 현지 언론은 지금까지 “트럼프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억눌렸던 백인 주류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카리스마형 언행이 주목을 끌고 있다”는 그 나름의 분석을 내놨지만 트럼프 현상이 장기화되자 이젠 서서히 기성 정치의 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오바마 정부 들어 더욱 심각해진 민주, 공화당 간의 갈등과 ‘정치’의 실종으로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적 인내가 다해가고 있다는 지적이 그런 것이다. 마치 2012년 한국 대선을 앞두고 여의도 정치에 절망한 한국 사회가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냈듯 워싱턴 정치권에 실망한 미국 사회가 돈키호테 같은 트럼프에게서 일종의 대안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6일 첫 공화당 대선 주자 토론회를 계기로 트럼프 현상의 지속 여부가 판가름 나겠지만 지금까지의 돌풍만으로도 미국식 정치 시스템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7년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승헌·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