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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녕]김정은의 ‘주체’ 표준시

입력 | 2015-08-08 03:00:00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의 시간이 각기 다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남을 약속할 때마다 어느 지역의 시간을 기준으로 할지 사전에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사람의 나이가 달라질 수도 있다. 번거롭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대개 한 나라에서는 지역이 다르더라도 하나의 통일된 시간을 쓴다. 바로 표준시다. 물론 미국 러시아 캐나다처럼 국토가 큰 나라는 지역별로 묶어 여러 개의 표준시를 쓴다.

▷표준시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정한다. 지구의 북극점과 남극점을 연결하는 자오선(경도선)을 동경과 서경으로 나눌 때 그 출발점이 그리니치다. 지구의 둘레 360도를 하루 24시간으로 나누면 15도마다 1시간씩 차이가 난다. 서울은 그리니치 동쪽에 위치해 있고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쓴다. 그래서 런던과 서울은 9시간 차이가 난다. 서울은 원래 동경 135도가 아니라 127.5도에 가깝다. 처음 서양 표준시를 쓸 때는 127.5도를 기준으로 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과 마찬가지로 동경 135도로 바뀌면서 그대로 굳어졌다.

▷북한이 이달 15일부터 동경 135도가 아닌 동경 127.5도를 표준시로 쓰겠다고 밝혔다. ‘일본이 빼앗은 조선의 표준시’를 되찾겠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렇게 되면 평양은 서울보다 30분이 늦어져 서울이 오전 10시일 때 평양은 오전 9시 30분이 된다. 표준시는 1시간 차이가 보통인데 30분 차이는 유별나다. 이젠 북과 만나거나 무슨 약속을 할 때도 외국처럼 ‘서울 시간’ ‘평양 시간’을 정해야 할 판이다.

▷북은 김일성이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주체’라는 연호를 쓴다. 2015년은 ‘주체 104’다. 세계가 다 태양력을 쓰는데 왕조시대도 아니고 주체 연호를 쓰는 북한이 답답하다. 연호는 자기들끼리만 쓰니까 영향이 없지만 표준시는 다르다. 같은 민족인 한반도의 반쪽이 시간을 달리 쓰겠다는 것은 불편하고 언짢다. 일제 잔재(殘滓)라서 동경 135도 표준시를 쓰지 않는 것이라면 근대 과학기술은 거의 전부가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것 아닌가.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