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널 행복하게 해줄것” 딸 자신감 키워줘
김 씨는 30대 후반이던 2001년 10대 초반인 박인비와 두 살 아래 막내딸(박인아 씨)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남편이 5남매 중 장남인데 위로 누님 세 분이 계셨다. 맏며느리가 애들과 떠난다고 하니 반대가 심했다. 집안일 피하려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렸다. 인비 아빠가 책임지겠다며 밀어줘 가능했다. 만약 실패했다면 쫓겨나지 않았을까.” 박인비의 유학에 대해 김 씨는 “한국에선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 힘들다. 골프선수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대안이 없을 것 같았다. 나도 두려웠지만 애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고 설명했다.
엄마와 두 딸은 한국인이 거의 없는 미 플로리다 주의 마운트도라라는 시골에 정착했다. 박인비는 “엄마는 영어공부에 방해된다며 한국어 TV 프로그램을 전혀 못 보게 했다”고 회상했다. 미 주니어 무대에서 박인비는 수십 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김 씨는 “인비는 진짜 골프를 잘 쳤다. 손목이 안 좋아 훈련을 많이 하지 못할 형편인데도 대회만 나가면 집중력이 폭발했다. 스펀지처럼 뭘 가르치면 그대로 흡수하는 스타일이다. 골프에서는 다중인격자”라고 칭찬했다. 잔소리가 필요 없었던 딸에게 김 씨가 늘 강조한 말은 따로 있었다. “넌 자랑스러운 내 딸이다. 골프가 널 행복하게 해줄 테니 훌륭한 탤런트를 계속 키워라.” 자신감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는 게 김 씨의 지론이다. 그러면서 “엄마 없으면 네가 엄마다. 하나뿐인 동생을 잘 보살펴라”고 당부했다.
아버지 박 씨는 가업인 용기 포장재 제조업체인 유래코를 경영하고 있다. 김 씨도 박인비가 독립한 뒤 포장용기를 만드는 KIB를 세워 경영자로 변신했다. 두 회사의 연간 매출액을 합치면 500억 원에 이른다. 김 씨는 “인비 덕에 영업이 잘된다”고 자랑했다. 박인비는 LPGA투어 통산 상금만도 120억 원이 넘으며 스폰서 계약과 인센티브 등을 합하면 수백억 원을 벌었다.
대학 산악반에서 남편을 만나 함께 암벽을 넘나들다 결혼한 김 씨는 임신 8개월 때까지 골프를 쳤다. 박인비가 지닌 타고난 손 감각은 모태 골프의 영향인지 모른다. 김 씨는 “명절이나 집안에 생일이 있으면 친척이 수십 명씩 모였다. 인비도 일찍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소중함을 배웠다. 코치 캐디 매니저 등을 식구처럼 여기는 것도 장점이다. 인비가 큰 짐(그랜드슬램) 하나를 덜었으니 앞으로 더욱 즐겁고 여유 있게 골프를 칠 것 같다”고 말했다.
잠깐 차나 마시자며 만난 자리가 점심까지 같이하며 어느새 3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골프 역사를 다시 쓴 딸과 엄마. 그 스토리는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