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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기용]뉴키즈 온 더 블록 그후 23년

입력 | 2015-08-10 03:00:00


김기용 산업부 기자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심가에서 열린 한국 가수들의 콘서트 현장. 자지러지는 듯한 미국식 환호성과 어색한 한국어가 넘쳐나는 속에서 뜬금없이 ‘뉴키즈 온 더 블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벌써 23년이나 지난 기억이다.

1992년 2월 17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미국 남성 5인조 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이 한국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뉴키즈 온 더 블록은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이란 노래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던 때였다. 공연장에는 1만6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여고생들이었다.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1992년 4월 11일)하기 2개월 전이었다. 한국에 아이돌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시기, 여고생들은 난생 처음 보는 아이돌 스타들에게 빠져들었다. 무대에 오른 ‘꽃미남 오빠들’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출근길 지하철 타듯 앞사람을 밀어댔다. 결국 사달이 났다. 일부 관객들이 쓰러지면서 뒷사람들은 쓰러진 앞사람을 밟았다. 40여 명이 부상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 가운데 18세 여고생 한 명이 다음 날 사망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기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멀쩡한 누나들이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라는 정제되지 않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신문들은 ‘빈약한 청소년 놀이 문화’, ‘문화 빈국 대한민국’, ‘문화 사대주의를 벗어나야’라는 등의 분석을 내놨다. 영화, 음악, 미술, 문학 등 문화의 모든 면에서 별 볼일 없었던 한국의 자화상이었다.

23년이 흐른 2015년 8월 1일 오후 7시.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있는 초대형 공연장인 스테이플스센터에서 CJ그룹이 개최한 한국 가수들의 콘서트 ‘케이콘(KCON)’이 열렸다. 1만5000여 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한국 아이돌 스타 갓세븐(GOT7), 로이킴, 씨스타, 슈퍼주니어가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대부분 여고생들로 보이는 팬들은 한글로 쓴 응원 문구를 들고 나왔다. 한국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한 금발 여학생은 공연을 마치고 이동하는 씨스타 멤버들을 우연히 본 뒤 “내가 씨스타를 봤어. 씨스타를 봤다고(I saw SISTAR, I saw SISTAR)”라고 미친 듯이 소리치며 공연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의 얼굴에 23년 전 ‘누나’들이 오버랩됐다.

이제 한국에도 소프트파워가 생겼다. 아직은 음악(대중가요)이라는 한정된 부문이긴 하지만 파급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케이팝 콘서트에 다른 부문이 따라붙는 ‘한국식 소프트파워 확장법’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CJ그룹은 공연장 바로 옆에 한국 중소기업의 최신 기술과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장을 함께 열었다. 전시장도 사흘 내내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꾸 뭘 섞어야(융합·통섭) 새로운 것(창조)이 나온다는 ‘비빔밥론’의 좋은 사례다.

김기용 산업부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