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創農이 일자리 큰밭]<3>‘스마트팜’ 만들기 나선 대기업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귀농해 식초를 만들고 있는 한상준 초산정 대표가 장독에 담근 식초를 맛보고 있다. 한 대표는 전통 방식으로 식초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창농한 뒤 현대백화점 ‘명인명촌’ 코너에 소개되면서 한 해에 식초 10만 병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한상준 초산정 대표(45)는 10년 전 대위로 예편하자마자 창농을 결심했다. 그는 “식초가 혈액순환과 당뇨에 좋다는 것을 책에서 알게 됐다. 그런데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3년간 식초 제조법을 독학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 대표는 집 보증금 5000만 원을 빼 고향인 예천에 혼자 내려왔다. 하지만 가공 설비, 환풍기 같은 시설을 갖추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폐가를 찾아 식초 만드는 공장으로 바꿨다. 안방은 발효실, 부엌은 가공실로 썼다. 잠은 쪽방에서 잤다. 그는 “제품만 잘 만들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꿈으로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창농의 요람’ 자처하는 국내 기업들
한 대표의 초산정 식초는 현대백화점 명인명촌 코너에 들어간 뒤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뭔가 어설펐던 포장은 현대백화점에서 비용을 투자해 다시 만들었다. 명절 때는 이상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포장을 사용했다. 한 대표는 “명인명촌 코너에 들어가자마자 매출이 배 이상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현재 초산정은 한 해에 전통 식초 10만 병을 생산하고 있다. 연매출이 15억 원가량.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우수한 품질의 식초 제품이 기업의 기획력과 마케팅이라는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업체는 더 좋은 제품을 직접 검증한 뒤 중간 거래상에서 살 때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농가는 중간 거래상보다 비싼 가격에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현대백화점의 지역 전통식품 브랜드 코너인 명인명촌의 지난해 매출은 70억 원으로 2010년 대비 14배나 뛰었다. 이마트 역시 국산 농산물을 직거래로 구입해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국산의 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갤러리아백화점과 롯데마트 등도 이런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 기술 입혀 ‘스마트팜(Smart Farm)’ 만들어
유통업체 이외에도 기술력을 가진 국내 대기업들이 ‘창농의 요람’을 자처하며 농업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과 SK 같은 기업들이 기술을 결합시켜 1·2차 산업에 그쳤던 농업의 6차 산업을 꾀하고 있다.
삼성은 ‘유일무이’한 사과를 만들자는 계획으로 상옥 스마일 빌리지를 기획했다. 과수원 안에선 누구나 항상 웃도록 하고 사과에 좋은 음악을 들려주며 재배하는 것을 권장한다. 이렇게 재배된 사과의 겉면에는 농민들 각자의 웃음이 담긴 ‘스마일’ 로고를 덧입혀 상품화한다. 삼성은 또 사과에 포함된 구취 억제 성분을 강화한 사과인 ‘키스 사과’를 개발해 사과의 독창성을 키울 예정이다.
SK는 자신들의 장기인 통신 분야를 농업에 접목한 첨단 영농기법을 세종시에 전파하고 있다. 지능형 비닐하우스 관리시스템인 스마트팜을 이용해 비닐하우스 내부의 온도와 습도, 급수와 배수 등을 원격으로 제어한다.
스마트폰에 설치된 애플리케이션을 조작하면 직접 비닐하우스에 가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든 농작물 재배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농촌의 고질적인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일손에 여유가 생기면서 인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도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 SK 측의 설명이다.
이기원 서울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기업의 기술력과 농업이 결합하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농가와 대기업이 협력해 ‘창농 스타플레이어’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천=김성모 mo@donga.com / 백연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