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하이닉스에 5兆 투자

SK그룹은 2013년 1월 최태원 회장이 법정 구속된 이후 굵직한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모두 미뤄 왔다. SK그룹은 향후 투자 가운데 상당액을 SK하이닉스에 집중해 SK하이닉스를 핵심 계열사로 키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힘 실리는 SK하이닉스
KDB대우증권 황준호 애널리스트는 “SK하이닉스에 추가로 투입되는 투자금은 M14 공장의 D램 설비를 확충하거나 청주 공장의 낸드플래시 설비를 보강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는 PC와 스마트폰 등 각종 정보기술(IT) 기기의 필수 부품이다.
M14는 복층으로 된 대규모 D램 생산 공장이다.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선도 회사’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수적이다.
또 다른 투자처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청주공장이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일본 도시바(東芝) 등이 속속 전력을 집중하고 있는 3차원(3D) 낸드플래시에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는 7월 2분기(4∼6월) 실적을 발표하며 “올해 3분기(7∼9월) 내 3D 낸드플래시 2세대(36단) 제품의 개발을 완료하고 소규모 생산 준비를 갖춘 뒤 3세대(48단) 제품도 연내에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반도체 경기다. 반도체의 특성상 경기 부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게다가 증권업계는 하반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전 세계 6월 D램 매출액은 37억7000만 달러(약 2조4486억 원)로 전월 대비 11.2%, 전년 동월 대비 5.2% 감소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32개월 만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D램 경기가 꺾이고 있는 상황에서 SK가 추가 투자에 나서는 것은 매우 공격적인 경영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애정도 각별하다. 하이닉스는 2012년 2월 SK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최 회장은 같은 달 이사회에서 SK하이닉스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고 그 직후 이천공장과 청주공장을 잇달아 방문해 “하이닉스가 행복해질 때까지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뛰겠다”고 말했다.
○ SK이노베이션도 추가 투자 나설 가능성 커
SK는 경제 살리기에 동참하기 위해 최근 그룹 차원에서 추가 투자 수요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세운 원칙은 ‘국내에 혜택이 집중돼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해외 시설이 아니라 국내 시설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SK텔레콤과 같이 투자를 했을 때 SK 내부만 살찌우는 곳은 피하기로 했다. 투자했을 때 그 혜택이 한국 경제계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하는 곳으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사업을 하는 수출 중심의 계열사로 후보가 모아졌다. 수출을 통해 외화가 국내로 흘러들어오면 경기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품의 95%를 수출하는 SK하이닉스가 주된 투자처로 꼽힌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북미 지역의 셰일가스 사업이 핵심 투자처로 꼽힌다. 중동 국가들이 원유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서 미국 셰일 에너지 기업들의 경영난이 심화돼 기업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는 점이 투자를 유인하는 요소다. 올해 5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북미 기반의 자원 개발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은 광구 매입이나 현지 기업 인수, 지분 투자 등 다양한 투자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시노펙이나 일본 JX에너지 등 해외 기업과의 합작 사업 투자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개선된 만큼 그동안 미뤄 왔던 각종 협력 사업 등을 연말부터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형준 lovesong@donga.com·황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