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어제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대(對)국민 사과와 함께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이번 사태는 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강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며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를 상장시켜 일본계 지분을 축소하고, 416개에 이르는 순환출자 가운데 80%를 올해 말까지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재계 5위 그룹 총수가 직접 사과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발표대로 실행된다면 다시 ‘입 속의 연인’ 같은 롯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 회장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해 “그룹 순이익 2, 3년 치에 해당하는 규모(7조 원)가 필요하고, 연구개발이나 신규채용이 영향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한 것은 사회적 압박에 밀려 해선 안 될 일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들린다. 롯데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나빠지고, 국세청 검찰 등 정부 부처가 일제히 조사에 들어가자 울며 겨자 먹기로 사과문을 발표하는 느낌마저 줄 수 있다. 17일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가 있지만 일본인 주주들이 거부할 경우 지분을 모두 공개하거나, 일본계 지분을 낮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신 회장이 진심으로 사죄하려 했다면 지주회사 전환의 비용이나 어려움을 먼저 말하기보다 사재(私財)라도 털어 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게 옳다. 롯데는 국회 국정감사 논의에 앞서 ‘선제 사과’로 위기를 모면해놓고, 앞으로 수년이 걸릴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북한의 위협보다 ‘오너 리스크’ 때문이라는 분석이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상식을 벗어난 롯데의 승계 다툼이 정부 당국과 한국의 시장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번져서는 안 된다. 롯데를 비롯한 재벌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도 개혁을 미적거린다면, 주주와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추구하는 전자투표제 집단소송제 등 강력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