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동빈, 부친에게 보고없이 개혁 승부수… “모두 내 책임”

입력 | 2015-08-12 03:00:00

[롯데 지배구조 개편]경영권 분쟁 사과회견 의미는



두번째 사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비판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위해 11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정부와 여론의 압박에 ‘지배구조 개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부 및 정치권의 요구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추락한 기업 이미지도 회복하겠다는 승부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신 회장이 ‘사과’보다는 본인이 롯데그룹의 유일한 리더라는 점을 대내외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데 방점을 찍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 여론 압박에 ‘개혁 승부수’

신 회장은 귀국 다음 날인 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와 경기 오산시 롯데인재개발원을 찾는 등 활발한 현장경영으로 건재함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후 집무실에 머물면서 측근들과 11일 발표문의 내용 및 형식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정치권마저 지배구조 및 자금흐름을 살펴보겠다며 롯데를 압박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사과문 발표는 신 회장이 지난 주말을 앞두고 최종 결정했고, 정책본부에는 10일 오전 통보가 내려왔다”며 “다만 신 회장이 오늘(11일) 아침까지 내용을 수정했다”고 전했다.

신 회장은 이날 ‘연내 순환출자 80% 이상 해소’라는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했다. 국내에만 416개나 되는 순환출자 고리 중 적어도 333개 이상을 끊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롯데법’을 만들어 해외 계열사와 연계한 순환출자를 금지시키겠다고 하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 회장은 또 “롯데그룹은 청년 일자리를 포함한 고용 확대 정책을 꾸준히 시행할 것”이라며 “사회공헌과 사회적 책임 프로그램도 확대해 국내 경제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정부 정책 ‘기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겠다는 뜻을 직접 언급한 것이다.

○ 한일 롯데의 유일한 경영자 재확인

신 회장은 이번 발표에 대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미리 보고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주무시는 회장님에게 어떻게 다 일일이 보고를 하겠냐”고 반문했다.

재계가 이날 가장 주목한 부분은 “모두 제 책임”이라는 신 회장의 발언이었다. 갑작스럽게 돌출된 경영권 분쟁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책임자’라는 위상을 스스로 세웠다는 것이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反)롯데 정서 때문에 쫓기듯이 사과문을 발표한 느낌”이라며 “사태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 표명을 하면서 결국 경영자가 자신이라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 회장과 롯데그룹의 당초 목적이 ‘사과’가 아니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사과문으로 형제간 분쟁이 해결될 수 없고, 또 (신 회장)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고 했다.

신 회장은 이날 자신이 가진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이 1.4%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은 광윤사, 우리사주협회, 자회사·조합 등이 각각 3분의 1씩 갖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주주총회 전에 비교적 적은 자신의 지분 1.4%를 공개한 것은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 ‘국적 논란’을 ‘국민 기업’으로 돌파 시도

이번 경영권 분쟁 이후 롯데그룹은 ‘반롯데 정서’ 확산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국민 정서 악화의 가장 큰 이유는 한국 기업인지, 일본 기업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데 있었다. 신 회장은 이를 불식시키려는 듯 ‘국민 기업’ ‘우리나라 기업’이란 말을 강조했다. 그는 “아버님께서는 한국에서 발생한 수익은 지속적으로 한국롯데에 재투자했다”며 “한국롯데는 상장된 8개 회사 매출액이 그룹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기업”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번 돈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지적에도 적극 방어했다. 그는 “롯데호텔은 2005년이 돼서야 배당을 했고, 지난해는 한국롯데 계열사들의 일본롯데에 대한 배당금은 한국롯데 전체 영업이익의 1.1%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롯데호텔은 국부가 일본으로 유출된 창구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호텔롯데 상장 계획도 현재 99% 이상인 일본롯데 측 지분을 낮춰 국적 논란에 대응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상장이 성사돼도 당장 한국 자본 비중이 20% 이상 높아지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롯데 내부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상장 시기는 내년으로 점쳐지고 있다.

김범석 bsism@donga.com·손가인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