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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의 시장과 자유]황교안의 새로운 도전 ‘규제개혁’

입력 | 2015-08-12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황교안 국무총리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이끈 한 주역이다. 법무부 장관이었던 그는 18차례의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중 정부 대리인으로서 처음과 마지막 변론을 직접 맡았다. 황 총리는 “심판에 들어가는 검사들도 아무래도 부담되지 않겠는가”라면서 “중차대한 일은 책임질 사람이 책임질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자유의 적’ 무너뜨린 법무장관


박근혜 정부의 종합적인 중간성적표는 합격점으로 보긴 어렵다. 그러나 ‘자유의 적(敵)’인 통진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을 헌재에 청구해 소멸시킨 결단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황 총리는 작년 11월 마지막 변론에서 “통진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라고 강조했다. 작은 개미구멍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제궤의혈(堤潰蟻穴)’도 인용했다. 국가의 기본 틀이 공격·폄훼당하고 흔들리는데 이런저런 눈치를 보는 것은 공직자의 직분이 아니라는 국가관과 소신, 책임감은 눈에 띄었다.

두 달 전 제44대 총리에 취임한 그는 요즘 규제개혁과 사회악 척결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기 반월·시화 산업단지에서 취임 후 첫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해 공장 신증설 및 산업단지 규제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달 7일에는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사건을 은폐하는 책임자는 파면까지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장 신증설 및 산단 규제완화 대책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해묵은 과제인 수도권규제 완화 효과였다. 저수지 상류 지역의 공장 신설이나 광고대행업 등 5개 서비스 업종 기업의 산단 입주 허용은 전국적으로 규제완화 혜택이 돌아간다. 하지만 30년 넘게 성역으로 여겨진 수도권규제 완화의 첫발을 뗀 의미는 작지 않다.

수도권규제를 푸는 데 대한 비수도권의 우려를 나도 모르진 않지만 한국은 미국의 한 주(州)나 중국의 한 성(省)보다도 좁은 나라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갈라 어디는 투자해도 되고 어디는 안 된다는 식으로 접근할 시대는 지났다. 국회를 통한 수도권정비계획법의 대폭 개정이 더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이라는 우회로 선택은 실질적 효과 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황 총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은 그제 필자에게 “엄중한 경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가능한 규제개혁은 속도를 내자는 것이 총리의 확고한 인식”이라고 전했다.

1982년부터 5년간 일본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어느 후배 정치인에게 “정치는 ‘아름답다’ 같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로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동사보다 철학적인 형용사를 중시해야 한다”는 반론에는 “물론 형용사가 빠진 정치도 문제지만 동사 없는 정치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치에서는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지만 적어도 행정은 ‘동사’로 상징되는 행동과 성과가 더 중요하다.

총리 성패 가를 규제혁파


67년 전 정부 수립 후 경제부총리나 장관과 달리 총리 중에는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사가 드물다. 대한민국호(號)의 추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무장관으로 큰 족적을 남긴 황 총리가 성공한 총리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국회의 벽을 넘어야 하는 사안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시행령을 고치면 가능한 규제혁파 과제는 과감하고 신속하게 손보는 것이 ‘총리 황교안’의 성패를 가를 시금석이 될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