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이진녕]로펌과 관피아

입력 | 2015-08-13 03:00:00


퇴직 공직자는 전관예우라는 관행 덕에 본인은 물론이고 그가 취업한 직장까지 엄청난 돈벌이를 한다. 이런 퇴직 공직자를 ‘관피아’(관료+마피아)라고 한다. 함께 근무하다가 떠난 선배에게 전관예우를 해주는 후배 공직자들은 앞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미리 닦는 것이니 나쁠 게 없다. 그들에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김앤장 태평양 세종 화우 등 대형 법무법인(로펌) 4곳이 전직 고위 공직자를 영입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아 최근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과태료 징계 처분을 받았다. 로펌들이 퇴직 공직자를 고용할 경우 명단은 지체 없이, 업무활동 내용은 매년 1월 말까지 관할 지방변호사회에 제출하도록 한 변호사법을 어긴 것이다. 이 규정은 고위 퇴직 공직자들이 로펌에 ‘고문’으로 영입돼 전관예우를 방패 삼아 무분별하게 관피아 역할을 하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2011년 신설됐다.

▷대한변협이 로펌의 잘못에 대해 처음으로 징계 처분을 내린 것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미진하다. 징계 수준이 과태료 부과에 그쳤고, 액수도 1000만∼2000만 원으로 대형 로펌 변호사가 받는 한 달 치 월급에도 못 미친다. 법조윤리위원회가 지난해 5월 법을 어긴 로펌 13곳에 대해 징계를 요청했으나 1년 2개월이나 지나 징계가 내려졌다. 그나마 9곳은 혐의가 가볍다는 이유로 서면 경고만 받았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에 로펌들이 겁이나 먹을지 의문이다.

▷고위 판검사 출신이 변호사로 변신한 뒤 엄청난 수임료를 챙기는 것 역시 전관예우와 관피아 문제에 속한다. 대법관 출신은 상고 사건에 도장 한 번 찍어주는 데 수천만 원, 검찰 고위직 출신은 정식 선임 신고서도 내지 않은 불법 전화 변론으로 억대를 챙겨 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관피아 방지법(개정 공직자윤리법)까지 만들었지만, 전관예우라는 악습 자체가 근절되지 않으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부터 법을 지켜야 법이 바로 설 수 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