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수업 수료 조건 기소유예 받은 청소년 6명 그림 전시회
1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청파갤러리에서 진재희 김명수 군, 손광진 법사랑 청소년선도위 운영처장, 권희연 숙명여대 교수(왼쪽부터)가 전시작품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진 군과 김군은 서울서부지검과 숙명여대가 소년범 처벌을 대신해 진행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두 학생은 올해 각각 사기와 특수절도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범죄자’였다. 진 군은 지난해 11월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 스마트폰을 팔겠다고 글을 올리고 15만 원을 송금받은 뒤 물건을 보내지 않았다. 2개월가량 시간이 지나며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까먹었지만 피해자의 신고로 올해 4월 경찰에 붙잡혔다. 김 군은 자전거를 훔친 친구가 “이걸 팔면 맛있는 것 사줄 테니 함께 가자”고 말해 장물 거래에 따라나섰다가 현장에서 검거됐다.
죄명만 들으면 심각한 범죄자지만, 사실 한순간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었다. 서울서부지검은 고민 끝에 이들에게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올해부터 숙명여대와 함께 새로 시작하는 미술체험활동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이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권희연 숙명여대 회화과 교수는 “미술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고 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하면서 법질서와 규범 역시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미술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꿈을 되찾기도 했다. 상업계 특성화고에 다니고 있는 김 군은 수업을 들으며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연히 사회복지사를 꿈꾸던 김 군은 미술수업을 들으며 ‘미술심리치료사’라는 구체적인 꿈을 갖게 됐다. 이를 위해 대학 진학도 결심했다. 김 군은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매주 들으며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미래의 꿈을 그리며 기계공학개론 책을 그려낸 진 군 역시 “그림을 그리면서 기계공학자가 되겠다는 오랜 꿈을 위해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소년범의 가벼운 비행을 이런 방식으로 바로잡는 노력은 지속적인 관심과 체계적인 교육으로 원상회복을 추구하는 이른바 ‘회복적 사법’의 하나다. 수사를 해서 단죄하는 이른바 ‘징벌적 사법’과는 다르다. 서울서부지검이 이화여대와 함께 2013년 시작한 음악체험활동에도 지금까지 소년범 26명이 참여했다.
황철규 서울서부지검장은 “지역공동체와 힘을 모아 ‘회복적 사법’을 실현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라며 “특히 순간의 실수 때문에 기로에 선 청소년들이 온전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지역사회와 함께 다양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