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신 소비자경제부 기자
바위산 위에 왕궁을 세운 이는 카샤파 1세라는 왕이다. 그는 아버지가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줄 거란 불안감에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왕이 되고 나선 동생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바위산 위로 올라갔고 요새와 같은 궁을 지었다. 바위산을 함께 오른 아버지는 필자에게 “왕이었지만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옥이었을까. 나는 물려줄 왕위가 없으니 네가 날 해칠 일은 없겠지”라는 섬뜩한 농담을 건네셨다.
회견장에서 신 회장은 “나는 아버지(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를 존경한다”고 했다. 말 자체는 좋은 말이었다. ‘이번 분쟁과 관련된 아버지의 의중이 무엇인지’에 대한 엉뚱한 답이라는 게 문제였다. 신 회장은 아버지·형(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과의 타협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가족과 경영은 별개’라는 말로 선을 그었다. 설령 아버지 뜻에 반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의미다.
신동빈 회장에게는 당분간 ‘아버지와 형을 밟고 일어섰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신 회장의 선택이 롯데그룹 전체를 위해서는 최선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아버지와 등진 아들’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반감은 쉽게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반감은 ‘반(反)롯데’ 정서를 확산시킨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신 회장이 사과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국민들이 갖게 된 롯데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작 분노를 불러일으킨 중요한 원인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사과가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 회장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꽤나 복잡하다. ‘신 씨 일가의 롯데’가 아닌 ‘국민 기업으로서의 롯데’를 바라면서도 신 회장이 가족을 모질게 내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한우신 소비자경제부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