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경제성장 70년]

1974년 6월 28일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열린 ‘애틀랜틱 배런’호 명명식 장면. 현대중공업 제공

앞서 현대중공업이 조선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국내외에서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국내에선 대한조선공사가 건조한 1만7000t급 선박이 최대였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고작 1%에도 못 미칠 정도로 영세했다.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대가 조선사업을 성공하면 내가 손가락에 불을 켜고 하늘로 올라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차관 도입을 위해 외국을 돌아다닐 때는 주위에서 “목선이나 만들라”는 말까지 들었다.
정 창업주는 이날 세계 조선사상 전례가 없는 최단 공기, 최소 비용으로 최첨단 초대형 조선소와 2척의 유조선을 동시에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사업계획을 밝힌 뒤 “우리나라 공업 발전 과정에 획기적인 이 대사업은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우리는 근면과 노력으로 정부와 국민의 협력을 얻어 본 사업을 필히 성취시킬 결심입니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그로부터 2년여 뒤인 1974년 6월 28일 오전 11시.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역사적인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준공식 겸 1, 2호선 명명식이 국가적인 행사로 개최됐다.
1, 2호선 선주 리바노스는 정 창업주에게 “지금까지 내가 본 배 가운데 가장 잘 만들어진 배”라며 인사했다. 현대중공업이 세계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또 오늘날 한국이 조선 최강국으로 성장하는 시발점이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