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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주주와 주인 사이

입력 | 2015-08-17 03:00:00


김상수 산업부 차장

기업의 주인은 누굴까.

요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다. 7년 전 증권담당 기자였을 때 똑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주주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이들이 “기업의 주인은 주주(株主)이며 주주가치 극대화가 최고의 선(善)”이라고 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고?

기업을 경영하는 지배주주를 제외한 주주들(기관투자가, 외국인, 개인투자자)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오너는 자본을 출자해 회사를 설립하고 모든 경영위험을 감수하지만 일반 주주들은 유랑객처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다.

목표도 다르다. 주주의 관심은 오로지 내가 얼마나 더 많은 수익을 내느냐에 있다. 배당과 주가 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 환원 정책만을 원한다. 하지만 기업이 번 돈을 고스란히 주주에게 배당하면 어찌 되겠나. 제때 투자를 못해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이 이뤄질 리가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투자는 주식이 아닌 기업을 사는 것”이라는 ‘증권쟁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7년 만에 다시 똑같은 물음을 던진 것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우선 지난달 벌어진 삼성과 엘리엇의 한판 싸움이다. 지난달 17일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한 데는 소액주주들의 공이 결정적이었다. 삼성은 위임장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의 소액주주들을 찾아다녔다. 또 주총 직전까지 신문과 TV 광고, 인터넷 홍보 등으로 사활을 건 ‘애국심 마케팅’을 펼쳤다.

그동안 사업 성장에만 몰두해 주주가치 제고에 소홀했던 삼성으로선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을 게 분명하다.

다음은 롯데 일가의 경영권 다툼이다. 롯데그룹의 총수 일가가 고작 2.41%의 지분을 갖고 국내에서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81개 계열사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국민은 분노했다. 명색이 재계 서열 5위 그룹인데 이사회나 이해관계자(주주 직원 소비자 협력업체 등 회사에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이나 그룹)를 철저히 무시하고 가족끼리 ‘짝짜꿍’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좌절했다.

다시 원론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자유시장경제론자인 미국의 밀턴 프리드먼은 “주주들이 기업을 ‘소유’하기 때문에 사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기업 이윤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세계적인 경영학자 찰스 핸디는 저서 ‘코끼리와 벼룩’에서 “주주는 임대권 소유자와 같은 성격으로서 자신의 돈에 대한 임대권만 요구할 뿐”이라고 했다.

어떤 게 맞는 말일까. 개인적으론 한국적인 상황으로 판단하는 게 옳다고 본다.

주주(Shareholder)가 주인이라는 미국과 종업원(Employee)이 주인이라는 일본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델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가 주인이라는 유럽식이 우리 몸에 맞아 보인다.

압축성장국가인 한국은 그동안 대부분의 기업이 성장에만 치중하느라 주주들의 권익 보호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최근엔 투자마저도 원활하지 않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상장기업은 주주 환원과 투자가 적고 현금자산을 사내(社內)에 보유한다”고 지적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국내 3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은 710조3002억 원으로 1년 전보다 5.7% 증가했다.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으면 번 돈을 투자에 써야 하는데 마땅한 투자처가 없으니 곳간에만 쌓아두는 것이다. 유보금 증가는 기업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 양쪽에 모두 도움이 안 된다.

강력한 오너경영이 과거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것도 맞지만 때로는 권한이 지나쳐 총수의 배임·횡령 사건이 줄을 잇는다. 이는 “기업이 내 것”이라는 잘못된 소유욕이 원인이다.

기업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경영진과 직원의 헌신, 주주의 믿음으로 이뤄진 소중한 가치(Value)이며 이게 빛을 발할 때 고용 창출과 국가경제 기여라는 더 높은 가치에 도달할 수 있다. 잇따른 이슈로 어수선한 지금, 재계는 기업의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상수 산업부 차장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