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한국의 거래소는 이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시작부터 정부 주도의 법정 독점 거래소였고 성장 과정도 정부의 자본시장 육성정책과 궤를 같이 해왔다. 이런 한국적인 상황에서 한국거래소는 우리 자본시장 발전의 역사를 앞장서 만들어 왔다. 매매 체결과 정보기술(IT) 운영의 안정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역동적인 파생상품 시장을 만들어 세계에서 한국 시장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다만, 거래소가 과거의 성과에 안주해 자기만족에 빠져 있기엔 글로벌 자본시장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 너무 거세다.
이제는 글로벌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높아지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장의 자율과 혁신이 절실한 시대가 됐다. 또 갖가지 규제로 획일적 형태의 거래만 이뤄지던 시대에서 상품 개발과 거래 방식의 다양성, 창의성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로 변했다. 세계 여러 거래소가 기존의 거래소 개념 자체를 뒤흔드는 변화를 추구한 것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경쟁력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거래소가 관행과 타성에 젖어 변화를 거부한다면 우리 자본시장은 글로벌 기업들과 투자자의 관심에서 멀어진 변방의 시장으로 퇴보할 것이다.
이번 방안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거래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선 좀 더 역동적이고 시장지향적인 조직문화와 경영방식이 필요하다. 기업과 투자자의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양한 상품을 공급해 더 많은 수익을 주주에게 돌려주려는 ‘기업가적 자세’도 갖춰야 한다. 지주사 구조로의 전환과 IPO를 통한 소유구조의 개혁은 독점적 공공기관에서 벗어나 시장형 기관으로 체질을 바꿔 나가기 위해 거래소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처방이다. 하지만 이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못 된다. 앞으로 거래소가 진정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거래소 자체적으로 추가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나온 거래소 경쟁력 강화 방안은 10년 만에 찾아온 개혁의 기회다. 이번 개혁이 한국거래소와 우리 자본시장이 ‘퀀텀 점프’를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용범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