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 갉아먹는 ‘官의 갑질’]공공기관 직원들도 갑질
“저녁 식사와 술은 당연히 저희가 샀죠. 술이 꽤 취한 상태였는데 노래방을 가자고 하더군요. 아무리 저희가 ‘을’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2013년 영상의학 관련 제품 교육을 위해 거래처인 지방의 국립병원을 방문했던 의료기기 업체 직원 A 씨는 당시 담당이었던 남성 공무원 두 명의 추태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아무리 제품을 구매해주는 ‘갑’이라 해도 여성인 자신에게 노래방 동행을 요구한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병원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해당 공무원 두 명은 견책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견책은 인사 징계 중 가장 가벼운 처분으로 6개월만 지나면 승진 대상에도 포함될 수 있다.
정부 부처의 ‘갑질’은 큰 규모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소소하면서도 지질한 갑질도 무수히 자행되고 있다. 을인 민간업체에 밥값이나 술값, 혹은 부서 회식비를 요구하고 출장경비를 떠넘기는 건 물론이고 앞선 사례처럼 성희롱에 가까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공공기관 직원이 을인 민간업체에 개인적인 향응이나 서비스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대덕연구단지 내에 있는 한 국립연구소에서 일하는 B 씨는 외주 업무를 진행하는 업체에 전화를 걸어 “가족여행을 가야 하니 여행지에 호텔을 잡아 달라”고 요구했다. 뇌물공여 요구에 해당하지만 업체 측은 어쩔 수 없이 비용을 지불했다. 이 사실이 내부감사에 발각돼 담당자는 행정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사건 이후 호텔 숙박을 제공한 업체는 이 연구소와 관련된 업무를 맡지 못하고 있다.
금융 관련 부처 공무원들은 사무실 인근의 은행이나 증권 지점을 이용할 때 송금 수수료 등을 안 내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지점장이나 직원들이 관련 부처 공무원인 것을 먼저 알고 자발적으로 받지 않기도 하지만, 해당 공무원들도 으레 수수료를 안 받는 줄 알고 아예 내지 않기도 한다. 은행 직원 C 씨는 “(공무원들이 수수료를 내지 않는 건) 오래전부터 이어진 관행”이라며 “이들이 내지 않은 돈은 지점 운영비 등에서 충당한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